자녀가 생기면 미혼일때나 무자녀였을 때와는 달리 180도 인생이 바뀐다고들 한다. 특히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여자에게는 그 변화가 더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들의 나름>은 자식의 시선으로 짐작해보는 어머니의 꿈과 자아상을 그리고 있다. 서술자의 어머니인 정화에게도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그런 변화가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인 나는 어머니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머니의 취향이 무엇인지, 어머니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다닐 때를 기점으로 어머니에 대해 좀더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을 뿐, 그 전까지는 정화는 아들에게있어 ‘어머니’였을 뿐이다. 인간 ‘지정화’는 사라진 채. 아들은 과연 어머니를 좀더 깊게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을까? 작품 전반부에 서술되는 화자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보인다. 부부동반으로 첫 해외여행을 왔으니 사이가 좋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감, 해외물정에 서툰 어머니를 배려하지 않은 독촉과 닦달, 핀잔을 보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어머니가 행동했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만이 돋보일 뿐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편이 되어 어머니를 구석으로 몰아간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면 내가 지나친 비약을 한 것일까.
가족끼리만 여행을 다닐 때와는 달리, 가이드 마리와 만나며 정화는 심경의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해외를 몇 번이고 들락거린 남편이나 아들과는 달리 평생을 국내에만 갇혀 살았으니, 해외에서 겪는 모든 것이 낯설었을 것이다.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박만 주던 아들과, 원래 네 엄마는 그랬다는 무심한 남편이 얼마나 서운하게 느껴졌을는지. 그러던 와중, 정화는 가이드 마리를 만났다. 자신이 젊었을 적부터 잘하던 프랑스어, 결혼한 이후로는 고이 접어 한 구석으로 치워뒀을 자신의 취향, 그것을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이때 정화가 느꼈을 감정은 사막에서 오랫동안 헤매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과 같지 않았을까?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인 가족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아이러니라니.
홍콩 여행을 다녀온 후 결국 정화는 자취를 감춘다. 전공을 바꾸며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 마리가 정화의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별거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자신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했을 정화는 처음으로 희망을 느낀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온전한 ‘지정화’로 살아갈 수 있는 미래. 중년의 나이에 홀로, 제대로 된 기반도 없이 해외살이하는 건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화에게는 그런 안정감보다도 자신의 자유, 해방감, 되찾은 자아가 더 소중했을 것으로 보인다. 엄청 큰 원목 책상을 산다는 정도가 기껏해야 정화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나마도 남편과 아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이자 빈도가 줄어들었다. 말만 들어도 갑갑해진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였다는 서술자의 회상에서는 내가 다 갑갑했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로 살기 위해 정화가 태어난 건 아닌데. 정화의 가정은 정화의 말없는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특히나 작중 서술을 보면 정화의 남편이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라고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전공을 살릴 기회도 주지 않아, 그나마 하고 싶어 했던 직업을 갖도록 끝까지 믿어주고 응원해주지는 못할망정 이기적이라고 비난하지를 않나. 정화의 남편은 정화를 전통적인 아내상에 가둬버렸고, 아들은 그런 정화를 응원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무심했다.
그럼에도 엄마에겐 지울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던 게 아니었을까. 돌아보면 엄마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남은 시간에는 늘 책을 읽고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뒤에는 눈물을 닦으며 한창 감상에 젖어 있기도 했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가거나 전시를 보러 가는 일도 빈번했다. 대부분 프랑스 예술이었지만 때론 전혀 다른 문화권의 것들도 섞여 있었다. 그런 엄마는 평소와 확연히 달라서, 한때 자신이 그런 것들을 사랑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문단을 읽을 때 가장 마음이 저릿했다. 그동안 아내의 의무, 어머니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자신, ‘지정화’를 잃지 않으려는 정화의 노력이 와닿았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 나는 결말까지 아들이 정화를 찾지 못했으면 하고 바랐고, 내 바람은 결말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내심 기분이 좋았다.
이 작품을 읽으며 정화와 함께 겹쳐보인 것은 바로 내 어머니였다. 내 어머니도 정화와 정말 비슷한 길을 걸어오셨다. 그리고 내 어머니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네 대다수의 어머니들이 바로 정화와 같은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자신은 한발 내려놓은 어머니들. 개인이 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며 다행히도 요새는 어머니들도 의무만 다하며 사시지는 않는다. 당신들이 하고 싶으셨던 것, 원하시던 것들을 하며 자아를 찾아 사시려는 그 모습이 뿌듯하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의무를 이행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면 어머니가 사라져 당황할 아들도 없고, 체념할 남편도 없을 것이다. 그게 바로 좋은 것 아닐까?
정화가 홍콩 어딘가에서 자유로운 삶을 계속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