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더 넓어진 지평선 공모(비평)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공모채택

대상작품: 만약에 당신이 (작가: 용복,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7월 30일, 조회 55

여우는 참으로 교활한 짐승입니다. 먹이사슬의 중간계 포식자로서 다양한 산짐승과 들짐승을 잡아먹습니다. 이는 사냥꾼들에게 큰 골칫거리가 되기도 하지요. 민가에 숨어들어 닭과 같은 작은 가축들을 잡아가기도 합니다. 같은 개과인 개와 달리 잘 길들지도 않습니다. 양지바른 땅에 굴을 파고 새끼를 낳거나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합니다. 이 탓에 양지바른 곳에 둔 무덤이 헤쳐지거나 시신이 훼손되는 등의 피해를 보기도 합니다.

이 탓에 여우는 신으로도, 요괴로도 여겨집니다. 여우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신, 요괴 등은 다양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둔갑과 유혹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사람의 간을 먹습니다. 여우누이전에서는 소나 가축의 간을 파먹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홀리고, 죽이고, 잡아먹는 요사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괴담이 널리 퍼져서 여우에 대한 안 좋은 인식과 무서운 부분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우는 이로운 짐승이기도 합니다. 닭이나 토끼를 잡아먹기도 하지만 곳간 따위에 숨어든 쥐를 잡아먹는 이로운 짐승이기도 합니다.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지요. 천호, 선호 등으로 불리며 신이나 신선으로서 천상의 일을 다스리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곡물과 농경의 신 이나리의 사자가 여우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극소수기는 하나, 몇몇 기록에 따르면 수행 중인 승려에게 가르침을 주거나, 자신을 살려준 이들에게 보은하는 이야기가 나오죠.

 

그런 관점에서 용복 작가님의 <만약에 당신이>는 여우가 보일 수 있는 신통한 능력과 정체성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호와 어떻게 만났는지, 미로가 주변 사람들에게 매번 다른 답을 내놓아도 사람들이 납득하고 그냥 넘어가던 것은 그 자체로 상대를 유혹하는 힘과 맞닿아 있습니다. 금세 미로의 옷과 가방 따위로 시선이 넘어가는 것 역시 유혹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시호가 미로의 기억을 봉인해 자물쇠로 걸어둔 것도, 일종의 둔갑이자 유혹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혹은 그 이전의 기억을 송두리째 빼앗거나 교묘하게 변형시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미로가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모두 되찾고 여우의 형상까지 얻은 뒤에는, 점점 인간을 해하고 생간을 먹고 싶어하는 충동이 강해집니다. 이 부분은 일반적으로 전해져 내려오거나 변용되는 구미호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발생합니다. 그저 간이식 전문 외과의사로 활동하며 병든 간을 가로챌 뿐이라 생각했던 시호에게서, 잡아먹을 사람의 프로필이 전달된 것입니다. 심지어 미로와 시호를 지켜보고 있는 이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이야기되죠.

미로는 자신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넘어, 인간의 생간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더 크고 어두운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게다가 그 대상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는 악인이며, 뒤처리까지 해준다니.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이라고는 하나, 요물이자 괴물이었던 여우가 천호나 선호처럼 높은 자리의 일을 맡게 되는 순간입니다. 게다가 이 일에는 여우로서의 본성을 그 어느 때보다도 즐길 수 있는 일이지요.

 

단순히 괴담과 공포스러운 이야기의 대상이었던 여우 설화는 시대가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화했습니다. 여우 캐릭터는 단순히 조선 시대나 그보다 더 옛날을 배경으로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성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신으로서의 모습을 더 강하게 보여주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의 캐릭터성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탄탄한 기반을 두고 창작이 가능한 점도 있습니다.

재작년에 출시된 모 소주의 마스코트 캐릭터도 작중 시호의 겉모습처럼 간 전문 외과의사를 직업으로 삼은 구미호라는 설정이지요. 더 나아가, 시호와 미로는 악인들의 간을 취할 수 있는 뒷길도 있습니다. 인간의 간을 먹고자 하는 여우의 본성과 악인의 처벌이 엮이며 여우 캐릭터가 더 확장될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우리의 전통과 설화를 활용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저로서는, 이런 방향도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써주신 용복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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