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모두에게 이타적인 세상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증오예찬론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soha, 17년 7월, 조회 70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montesur 님의 초월을 리뷰하였을 때, 게임 이론을 이용하여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분석해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리뷰에는 한 가지 허점이 있었다. 리뷰에서도 한 문단을 할애하여 언급하였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이타적인 행동이 자주 관찰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배신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게임 이론에 대해 모르더라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 또한 나를 대할 때 동일하게 생각하리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협력하여 더 나은 미래로 같이 향한다. 물론 montesur 님의 초월을 리뷰할 때는 등장인물들이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더라도 미래가 파국으로 향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배신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이러한 경우는 매우 특수하다.

montesur 님의 초월과는 달리 이 글에서 사람들은 평화로운 세상을 이룩할 수 있었다. 본문을 그대로 옮겨 보겠다.

그런데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모든 사람들은 ‘아, 이젠 이렇게 살면 안되겠군’이라며 깨달아버렸습니다. 그러자 바야흐로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작가는 이 글의 장르를 SF라고 해두었으며 모든 SF는 기본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생각해보자. 법이나 규율 없이 자발적으로 인간들이 서로 간에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놀랍게도 개인의 가장 효과적인 선택이 남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임 이론은 이러한 이타적인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을 허용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는 매우 안정적이며, 사회의 구성원들은 서로 간에 배신하지 않는다. 이 사회는 구성원들이 팃포탯 전략을 따를 때 가능해진다.

팃포탯 전략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게임의 규칙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게임은 두 사람 간에 이루어지며 각 사람은 상대방과 협력할 것인지, 또는 배신할 것인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둘다 협력할 경우 둘은 좋은 보상을 얻는다. 한 쪽이 협력하고 다른 쪽이 배신한다면 협력하는 쪽은 매우 좋은 보상을 얻고, 배신하는 쪽은 매우 나쁜 보상을 얻는다. 둘다 배신할 경우 둘 모두 나쁜 보상을 얻는다.

게임의 규칙에 대해 몇 가지 더 언급해두자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며, 지금까지의 게임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montesur 님의 초월을 리뷰할 때 사용한 게임과 달리 이 게임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될 수 있다.

팃포탯 전략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 팃포탯 전략을 따르는 사람은 첫 경기에서는 무조건 협력한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부터는 상대방이 전에 했던 선택을 그대로 따라한다. 상대방이 첫 경기에 배신했으면 나는 두 번째 경기에서 배신하고, 상대방이 두 번째 경기에서 협력했으면, 나는 세 번째 경기에서 협력하는 식이다.

다른 전략들과 차별되는 이 전략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명료함: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다.

  2. 착함 : 항상 협력으로 시작한다.

  3. 즉각보복 : 상대방이 배신할 경우 다음 경기에서 배신한다.

  4. 용서 : 상대방이 협력할 경우 다음 경기에서 협력한다.

이 4가지 특징들을 잘 살펴보면 팃포탯 전략이 왜 그렇게도 성공적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팃포탯 전략을 따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방은 이 사람이 어떤 전략을 따르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고(1. 명료함), 배신을 시도했을 때는 즉각적인 보복을 당한다.(3. 즉각보복) 과거에 팃포탯 전략을 따르는 사람에게 배신한 적이 있더라도 협력을 선택할 경우 팃포탯 전략은 협력으로 대응하고(4. 용서), 첫 게임에서 항상 협력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2. 착함)

따라서 팃포탯 전략을 따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이성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방안은 계속 협력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팃포탯 전략은 상대방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즉, 팃포탯 전략을 따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팃포탯 전략을 따르는 사람에게도 성공적인 결과를 주어야만 한다. 팃포탯 전략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른 전략을 따르는 사람들보다 항상 우위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팃포탯 전략이 사회의 주류가 될 경우 팃포탯 전략은 항상 협력으로 시작하므로 모든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협력하게 된다. 소설 도입부에서 언급되었듯이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평화로운 세상을 이룩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팃포탯 전략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글 마지막에서 헤레틴은 파무크를 죽이고 만다. 헤레틴이 속한 사회와 파무크가 속한 사회 모두 팃포탯 전략을 따른다고 가정해보자. 헤레틴은 의도치 않게 파무크를 죽였다고 말한다. 즉, 서로간의 오해로 인해 헤레틴 측은 파무크 측을 배신하고 만 것이다. 이 때 다음 게임은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 살펴보자. 헤레틴 측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협력을 제안하였으므로 다음 게임에서는 협력을 제안한다. 하지만 파무크 측은 상대방이 자신을 배신하였으므로 다음 게임에서는 상대방을 배신한다. 이렇게 협력과 배신은 번갈아가면서 끝없이 반복되고 만다. 팃포탯 전략은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빠져나갈 수가 없다. 이것이 팃포탯 전략이 가지는 가장 큰 단점이다.

다시 한 번 게임 이론의 가정으로 돌아가보자. 게임 이론은 사람들이 모두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감정적인 선택은 없으며, 모든 선택은 논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행동에 게임 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항상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가장 안정적인 전략들 중 하나인 팃포탯 전략을 따르는 사람들은 서로와 협력하며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고, 이 사회에는 인간적인 오류는 없다. 반대로 말하면 인간적인 오류를 긍정하는 경우에는 팃포탯 전략이 파국을 맞는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할 수가 없다. 작품 소개에 서술된 내용을 빌려오자면 팃포탯 전략과 게임 이론이 보여주는 세상은 유토피아이지만 감정이 없어 삭막한 곳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헤레틴이 쏜 총알은 상징적이다. 가장 인간적인 문제들 중 하나인 의사소통의 문제는 파무크가 말했듯이 이유 없이 폭력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은 증오를 만든다. 파무크는 이것을 가짜 증오라고 만들지만 협력과 배신의 소용돌이를 시작할 방아쇠가 되기는 충분하다. 두 집단은 각자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집단이 아주 악랄한 행동을 하고 있거나 제대로 협력할 의사가 없다고 결론지을 것이다. 이렇듯 한 때 가장 안정적이고 화목했던 사회는 단 한 번의 총성으로 인해 무너져버리며, 미래에는 증오가 번지고 만다. 이것을 무자비한 논리에 대한 감정의 승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후 사회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다. 사회를 지배하던 전략이 무너진 후에는 또다른 전략이 나타날 것이며, 이로 인해 바뀐 세상은 누군가에게는 더 좋아질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더 나빠질 것이다. 글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고 리뷰를 마치겠다.

파무크를 잠식한 죽음에게서 도망치기 위해서. 숨이 끊어질 것처럼 달리며 헤레틴은 증오가 번질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진정으로 바라는 세상이었지만, 그게 좋은 일인지는 좀 헷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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