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것 참… 취향 제대로 건드려버리네! 점점 또라이가 되어가는 주인공이라니 감상

대상작품: 상향등 (작가: 유우주,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5월 22일, 조회 13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오호라? 하게 되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 <상향등>이 역시 그랬다.

– 내 최초의 살생은 고라니였다. 모기 따위를 제외한, 정말로 내 영혼에 충격을 준 살생 말이다.

위의 문장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담백하게 고라니를 차로 들이 박아 죽였던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 다음에는 그 당시에 ‘어땠는지’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이 소설의 첫 문단이다. 퇴근길 지옥철에 끼인 채로 첫 문단을 읽은 순간 알았다. 29매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기도 하지만 ‘이거 단숨에 다 읽겠네, 심장 뛰게 하네’ 라는 확신 말이다.

오랜 만에 박성원 작가의 <우리는 달려간다> 단편집에 수록된 ‘긴급피난’을 읽었을 때가 기억났다. 그 소설의 문장을 짧게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 도대체 내 죄가 무엇이라고. 기껏해야 내 죄는 사슴을 피하다 자동차를 제대로 제어하고, 조종하고, 통제하지 못한, 그것도 눈 때문에 벌어진, 죄밖에는 없지 않은가. 당한 사람은 나인데 왜 내가 뒤집어써야 하나. 목격자라고 착각하는 그녀만 사라져준다면 모든 것이 간단하게 해결될 것이다. 긴급피난. 그래, 어쩌면 이런 상황은 긴급피난에 해당할지 모른다.

인용한 소설 <우리는 달려간다>의 주인공은 사고를 범하고 난 뒤에도 ‘자기합리화’를 꾸준히 시도하며, 종국에는 인간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한다. 그 순간에도 주인공은 ‘정당’하며 오히려 ‘떳떳’하기까지 한다. 살짝 미쳐버린 듯한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대학 시절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당시에 나는 박성원 작가의 소설들을 탐독했었다.

그런고로, 이 소설 <상향등> 첫 문단을 읽으며 오랜만에 서늘한 무드와 담담한 문장 그리고 그 속에 묻어나는 살짝 정신이 나간 듯한(광기 어릴 만한 소지가 분명한) 주인공을 만났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아, 사람의 취향이란 참으로 소나무와 같아서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이러한 무드의 소설에 열광한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적당히 미쳐 있어야 매력적인 법이다. 특히 소설 속 캐릭터가 살짝 미쳐 있다면, 그에 더해 괴이한 신념마저 갖고 있다면… 흐뭇하게 웃게 되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러한 취향을 갖고 있는 내 입장에서 이 소설 주인공은 약간 덜 미쳐 있었다. 이 소설 전체를 아울러 보았을 때 아쉬웠던 점은 딱 그거였다. 조금 더 미쳤어도 될 것 같다는, 주인공을 조금 더 코너로 몰고 갔어도 됐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갓 스무 살이 지난 학생 시절에 저지른 실수(고라니를 차로 쳐 버린 것)를 오래도록 악몽으로 겪을 만큼 심약한 사람이며, 명문대에 유학까지 다녀온 뒤에도 일거리를 찾지 못한 백수 신세다가 겨우 화물 트럭을 몰게 된, ‘사회 통념적인 잣대를 들이대자면’ 실패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심지어 대기업에 다니는 동생과 비교마저 당하는 신세다.

낙이라고는 화물트럭의 덩치를 이용해서 도로 위에서 ‘위험천만한 놀이’를 벌이는 것밖에 없는 인생. 물론, 이 소설 안에서도 충분히 섬뜩한 장면을 만들어내지만 나는 조금 더 미쳐도 좋겠다 생각했다.

진짜 칠렐레 팔렐레 미치는 게 아니라, ‘나름의 신념’을 갖고 미치는 것 말이다. 그랬을 때 캐릭터는 대체 불가한 ‘파워’를 얻게 되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된다. 이러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은 것은 지금 만들어진 스토리 내에서 이 캐릭터의 백 그라운드와 ‘불이 붙을 만한 심지’는 마련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소설 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주인공의 인생에서 ‘방아쇠’는 당겨졌다. 고라니가 아닌 진짜 사람 혹은 누군가의 ‘생’을 해할 준비는 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조금 더 주인공을 코너로 몰고 간다면, 또한 그 결말이 어떠한 설명이나 변명으로 포장되지 않고 진짜 ‘주인공의 비뚤어진 신념 혹은 가치관’을 잘 드러낸 결말이 되게 된다면 어떨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며(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영화 ‘다크나이트’ 속 조커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려나) 이 소설은 짧은 분량 내에서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담담하게 캐릭터의 상황을 잘 만들어 낸다.

또한, 지금 이 상태의 결말 역시 좋다. 섬뜩한 분위기를 잘 만들어내는 일이란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을 해냈으니까. 다만, 조금 더 길어져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이렇게나 길게 써냈다.

이 소설의 서사는 거의 다 가려둔 채로 이 정도 분량의 리뷰를 쓴 것에서 사심이 팍팍 느껴졌다면, 또 이 리뷰를 보고 ‘대체 이게 뭔데!’ 궁금해 졌다면 지금 바로 읽어보도록. 단언컨대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추가로 이 소설이 재밌다면 박성원의 단편집 <우리는 달려간다>도 읽어보기를 조심스럽게 추천해 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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