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린 욕망, 그 끝을 보다. 비평

대상작품: 왕이시여 바라옵건대 (작가: 하예지, 작품정보)
리뷰어: 피오나79, 17년 7월, 조회 30

여기, 자살하려는 한 소년이 있다. 그는 텔레오 왕국의 소년 왕 마코르 네이선 에티에네트. 3년 전, 선왕이 갑자기 승하하면서 15살이라는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선왕의 어진 치세를 보아 왔던 터라, 그는 어렸지만 제법 괜찮은 왕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자살을 하려는 참이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아무리 곱씹어도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몸은 5층 아래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소년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뜬다. 그리고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꿈인가? 하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나면, 어김없이 자신이 자살하려는 그 순간으로 돌아오고 만다.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로. 그리고 숨이 끊기면 다시 죽기 전으로 돌아온다. 매번 같은 날짜로. 그렇게 수십 번 죽음을 반복하면서 마코르는 자살을 선택한 동기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그가 왜 매일 죽어야 하는지 알고 싶었으니 말이다.

이쯤 되면 같은 시간대를 반복해서 겪게 되는 타임 루프에 갇히게 주인공을 그리고 있는 몇몇 영화가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분명히 죽음을 맞이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 다시 그 끔찍한 날이 시작된 시간에 다시 깨어나 그것을 반복해야 하는 패턴은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 인물이 풀어야 하는 미스터리는 얼마든지 다양하게 변주가 가능하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전날과 똑같은 하루를 반복 재현시키는 과정에서, 미묘하게 조금씩 달라지는 주변 인물들과 상황들로 마지막 반전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말이다.

대부분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타임 루프에 갇히게 된 인물이 고군분투해서 결국 그것을 벗어나 그토록 원했던 평범한 내일을 맞이하는 식의 해피엔딩이 많았는데, 흥미롭게도 이 작품의 결말은 그렇지 않다. 왕국이라는 권력 관계가 배경이어서인지, 왕의 죽음과 관계된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인물들의 비틀린 욕망과 추악한 마음들이 뒤엉켜 거대한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 신선했다. 왕이 자살을 해야 했던 이유, 그리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그의 미래, 왕 주변의 의심스러운 인물들.. 궁금한 부분들을 포석처럼 여기저기 쌓아 두고 차근차근 선을 그어 도달하는 클라이막스는 거칠더라도 매우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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