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시간여행은 제가 좋아하는 소재고, 그 소재를 이용한 이 소설 역시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는 점을 밝힙니다. 이 리뷰의 앞부분은 시간여행 설정에 대한 분석이고, 뒷부분은 소설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소설 자체에 대한 리뷰는 뒷부분에 해당하므로 복잡하게 따지는 게 귀찮으신 분은 뒷부분으로 넘어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앞부분에서는 순전히 제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설정에 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스포일러는 당연히 가득할 수 밖에 없으니 먼저 소설을 읽고 리뷰를 봐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이 작품은 타임 패러독스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일어나는 사건으로 인해 논리적인 모순이 발생하는 현상이 주된 소재죠. 이런 소설을 시간여행, 혹은 타임리프물이라고 통칭하기는 하지만 포함하는 범위도 넓고 규칙도 사실 작가가 정하기 나름입니다. 일단 이 작품에서의 시간여행 규칙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기로 합시다.
시간여행물은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A1. 시간여행 : 개인 혹은 집단이 자신의 몸을 가지고 다른 시간대로 이동한다. ‘미래의 나’가 ‘과거의 나’를 만나는 것이 가능함.
A2. 의식의 이동 : 자신의 의식만 다른 시간대로 이동한다. 몸이 이동하지 않으므로 두 명의 내가 만나는 일은 없음.
A3. 과거의 변화 : 의식이 이동하는 일이 없이 과거의 특정 사건을 변화시킴.
A4. 미래로부터의 정보 송신 : 미래에서 누군가가 보낸 정보를 송신함.
A5. 선인식 / 예지 : A4와 비슷하지만 미래에서 정보를 보내는 사건 없이 그냥 알게 된다는 점이 다름. A2번을 미래의 기억을 선인식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의 설정은 A4번입니다. 투모로폰이라는 기업에서 미래로부터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죠. 시간여행의 설정 중에서는 상당히 제한된 설정이지만 여기서도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B1. 과거에서는 메시지를 받았지만, 정작 미래에서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음.
B2. 미래에서 받은 메시지와 다른 사건이 발생함.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나면 세계가 붕괴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는 달리, 소설에서는 이 두 가지가 이미 모두 일어난 상태입니다. B1번은 굉장히 드물지만 발생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 내부 직원의 폭로로 밝혀지고, B2번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사실 미래를 바꿀 생각이 없으면 메시지를 받을 이유도 없겠죠.
소설에서는 타임 패러독스가 세계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가능하면 패러독스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 모순을 피해갑니다. 원래는 죽어야 할 사람들이 살아난 경우, 이 사람들이 세계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용소에 가두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논리입니다. 심지어 투모로폰은 미래에서 받은 메시지를 이용해 사건 자체를 최대한 그 메시지와 비슷하게 발생시키려는 노력까지 합니다.
“미래에서 보면 이미 죽은 사람이어야 할 태열 씨는, 더 이상 이 우주에 영향을 끼칠 수 없도록 보호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나비효과를 거쳐 어떻게 커질지 모르니까요.”
“만약 투모로폰에서 이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면, 이 사람이 당선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유권자들 절반 가까이가 미래정보를 보고 그대로 찍는대잖아. 그 타임 패러독스가 무서워서.”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수감자들이 투모로폰이 주장하는 타임 패러독스의 위험성을 의심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수감자들은 다음과 같은 증거들을 점차 알아갑니다.
C1. 미래정보를 이용해 살아남은 사람이 2년 넘게 수감되지 않고 바깥 세상에서 살아감.
C2. 과거로 발송해야 할 메시지 중 하나가 누락됨.
C3. 그 누락은 발송인이 이미 사망하여 발생한 것임.
소설에서 묘사하는 바는, 수감자들이 C1, C2, C3의 정보를 알아가면서 투모로폰을 더 강력하게 의심한다는 겁니다. 즉, 사람들이 느끼는 타임 패러독스의 위험성은 C1 < C2 < C3 이란 뜻이죠. 다음 내용에서 그 부분을 알 수 있습니다. C1번의 예를 듣고도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자, 내부 직원이었던 사람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음… 유성 씨. 사실 전 이미 타임 패러독스가 깨진 것을 한 번 보았어요.”
“…네? 뭐라구요?”
이 부분에서 작가가 소설 내에서 정의한 타임 패러독스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가 혼란스러웠습니다. 대사를 보면 B1번만이 타임 패러독스여야 말이 되는데(B2에 해당하는 C1의 예를 이미 들은 상태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얘기하고 놀랄 이유가 없죠), 만일 그렇다면 미래정보대로 투표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당선되는 것은 B2에 해당하므로, 이걸 타임 패러독스라고 부르는 것과 모순되게 됩니다. 또한 이어지는 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회사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분 중 한 분이 실수로 누락된 거죠. 근데 놀라운 건 누락 경위였어요. 그 메시지의 발송인이 이미 사망했다는 거에요.”
즉 C2가 발생했는데, 더욱 놀라운 건 C3이 원인이었단 뜻입니다. 문제는 C2는 B1 사건이고, C3는 B2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B1 만이 타임 패러독스라고 표현하는 건 과장이라고 해도, 적어도 B1이 B2 보다 더 심각한 사건이라는 게 내용 전체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보면 위와 같이 이야기하고 거기에 수감자들이 설득되는 과정은 좀 납득이 어려웠습니다.
투모로폰에 대한 의심이 깊어져 가는 과정은 플롯 중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좀 더 논리적으로도 탄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만은 과연 다른 분들도 저처럼 깐깐하게 따져가며 파고들지는 의문입니다. 아마도 별 문제없이 작가님의 의도를 따라간 분들이 더 많으실 것 같아요.
굳이 이렇게 리뷰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서 따지고 드는 이유는, 작가님이 타임 패러독스에 대해 많이 고민하신 흔적이 작품 곳곳에서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수용소에 외부 정보가 들어가는 건 문제 없지만 수용소의 정보가 외부로 나오면 안 된다는 부분이나,
매번 미래정보를 받을 때마다 새로운 평행세계가 생겨서 괜찮다는 주장도 있고요. 우리가 받은 미래정보는 ‘모든 가능한 미래’로부터 받게 되는 거라 실제로 이루어진 미래랑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론도 있었구요.
이런 정보를 슬쩍 지나가며 흘리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제가 지적한 부분이 옥의 티였다면 간단히 보완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제가 놓친 부분이 있어 착각한 거라면 알려 주세요~!)
사실 타임 패러독스가 맞느냐 아니냐 하는 건 이 소설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전 뭘 잔뜩 써 놓은거죠… 지우기도 아깝고…;;;) 이 소설의 핵심 주제는, ‘미래정보라는 엄청난 정보를 한 기업이 독점한 상황에서 우주의 붕괴라는 극단적인 위험을 일방적으로 경고할 때 개인들의 인권이 어디까지 보장될 수 있는가’입니다.
투모로폰 사는 이미 미래정보를 틀어 쥐고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미래를 최대한 실현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돈을 받고 꾸민 가짜 미래를 슬쩍 끼워 넣는 방식이죠. 그런 과정에서 회사의 이익과 관련없는 개인들은 완전히 소외됩니다. 수감자들의 존재가 타임 패러독스에 얼마나 위험한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투모로폰 사가 이들을 편의주의적으로 대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혹시 모르니까 가둬 버린다는 식이죠. 그런 태도는 유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수감자들의 수를 조정하는 그들의 방식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자신들은 붕괴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돈을 지불하는 자의 입맛에 맞게 미래를 바꾸면서, 정작 얼마나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는 개인들은 손쉽게 사회적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사망시켜 버립니다.
주인공의 태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가족의 생명이라는 점에서 동정표를 사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료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합니다. 차라리 그 점을 솔직히 인정하면 좋으련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행동이 대의를 위한 것이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정보를 독점한 자가 어떻게 개인의 정신까지 지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죠.
그런 상황에서 개인은 얼마나 무력한가요. 등장인물들은 투모로폰과 타임 패러독스에 대해 여러 의견들을 내놓지만 결국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갖추는 게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거죠.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이들이 수용소를 탈출하면 정말 우주가 붕괴할까요. 아니면 아무 일도 없을까요.
정치인과 결탁된 투모로폰에 의해 수용소에 갇힌 수감자들이 탈출을 위해 정치인의 언변에 의존한다는 점도 아이러니지만 가장 극적인 부분은 이곳입니다.
“여기 들어오기 전에 이미 미래정보를 받았거든요. 태열이라는 사람이 배신해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사람들과 함께 수용소를 무사히 탈출했다고.”
타임 패러독스는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탈출을 주도하던 이빈이 믿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투모로폰에서 받은 메시지였던 겁니다. 과연 그 메시지는 진짜일까요? 투모로폰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어째서 투모로폰의 기계를 이용해 받은 메시지는 굳게 믿고 있는 걸까요. 혹시, 그 역시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투모로폰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정보를 독점한 자에 의해 정보가 조작되고, 접근이 제한되면, 개인은 그 어떤 가치판단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이 소설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미래의 이야기일까요? 이미 과학기술은 일반인의 이해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섰습니다. 우리는 그저 누군가가 해 주는 이야기를 듣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 진실을 추측할 뿐이죠. 당신은 어떻습니까. 쳇바퀴 돌듯 학교와 직장에 매여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표준이라고 정해진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의 가치판단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자들에 의해 오염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