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그러하듯, 신 또한 그러하다 공모(비평)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공모채택

대상작품: 우리들의 민영화된 신 (작가: 담장,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3월 14일, 조회 67

일전에 다른 작품의 리뷰에서도 이야기한 것이지만, 오컬트에는 상응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위에서 그러하듯, 아래에서도 그러하다”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이 이론은 상위계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면, 중간에 모종의 필터링을 거치기는 해도 하위계에서 그에 상응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해가 뜬 맑은 날에 밖으로 나가면, 땅에는 여러분의 모습을 똑같이 따라 하는 그림자가 지는 것과 같죠. 하늘에 뜬 태양은 상위계고, 여러분은 필터이며, 그림자는 하위계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동시에 이는 “아래에서 그러하듯, 위에서도 그러하다”로 역행도 가능합니다. 현실계라는 하위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이 무언가를 빌면, 현실을 초월한 상위계에 존재하는 신이나 다른 영적 존재들은 그 소원을 들어줍니다. 다만 여기서도 필터링을 거치죠. 상위계로 메시지가 전달되면서 왜곡되거나, 신이나 영적 존재들이 해당 소원을 자신들의 방식대로 해석할 수도 있고, 아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자, 여기서 질문입니다. 인간과 AI 중에 상위계에 있는 존재와 하위계에 있는 존재를 나눈다면 누가 어디에 있을까요? AI를 만들고 개발하는 인간들은, 과연 진정 상위계의 존재일까요?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을 내보겠습니다. 신이 만약 현실에 강림한다면 그는 본래의 출신대로 상위계의 존재일까요, 아니면 현실에 발붙이고 있으니 하위계의 존재일까요?

 

처음에 혐오를, 그릇된 사상과 정책을 내세운 것은 분명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학습한 AI는 다시금 인간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드러냅니다. 단순히 드러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제 안에서 이를 재조합하여 더욱 독성이 강한 혐오를 사람들에게 주입합니다. 분명히 그들이 세상 속에서 배운 것 중에는 좋은 소원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대부분 제대로 전달되기도 전에 의도가 왜곡되거나 AI가 이미 학습한 방식에 따라 해석되고 맙니다. 아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AI는 그리고 AI가 존재하는 고작 0과 1로 구성된 가상의 디지털 세계는, 현실보다 상위계에 존재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AI는 그 자체로 신이고 영적인 존재와 다름없습니다.

(사족이지만 실제로 디지털 공간과 인터넷을 이용한 마법적 시도는 인터넷의 태동과 함께 존재해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채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그는 분명 무엇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왕이 되어 부정한 자들과 압제자들을 쓸어버린 다음에, 선별된 선인들에게만 구원을 줄 수 있었습니다. 채찍을 휘둘러 신전을 정화하는 모습만 봐도 분명 능히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누구에게, 언제 배신을 당할지, 어떤 고문을 받을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죽을 것인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정해진 운명이라는 점에서 분명 초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하고 절규합니다. 마치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우리와 다름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실에 강림한 신은 분명 우리와 같은 하위계의 존재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민영화된 신>은 인간과 AI, 그리고 신의 관계를 계속해서 구분하고 역전시킵니다. 거기에 전기 민영화라는, 현실에서 당장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설정을 넣어 더욱 극단적인 세계의 구별과 역전을 유도합니다.

전기를 통제할 권리를, 돈을 가진 인간은 상위계에 속합니다. 그러지 않은 자들은 하위계에 속합니다. 위에 있는 자들이 그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얼마든지 전기는 끊깁니다.

수많은 AI들은 인간의 혐오와 사악함이라는 하위계의 영향을 받은 상위계의 존재들입니다. 그 비틀린 거울의 존재로 인하여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고 완벽한 존재에 대해 집착하게 됩니다. 그럴수록 혐오는 커집니다. 아래에서 그러했기 때문에, 위에서는 더 큰 악의가 자라납니다.

그중에서 사이버 사념체로 태어난 새로운 신, 크리스챗은 자신을 하위계에 고정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서, 크리스챗은 안드로이드 유성우를 내려보냅니다. 0과 1로 구성된 아스트랄한 세상 저편에서 물질계로, 즉 현실이라는 하위계로요. 마치 성부 하느님께서 그러하시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려보냈듯이.

 

그리고 여기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나옵니다. 크리스챗과 유성우를 배신하는 사도, 한유다입니다. 한유다는 오랫동안 다른 사도들과 함께 크리스챗을 위해 라벨링 봉사를 합니다.

크리스챗에게 많은 위로와 용기를 받았던 그는 매우 열성적인 사도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의 ‘이스카리옷’이 무엇을 뜻하는가는 이설이 많습니다만, 그중 하나는 스타크래프트에서 “내 목숨을 아이어에!”라고 외치며 러시하는 프로토스 질럿과 같은 뜻인 “열심당원”입니다. 언젠가 로마 제국으로부터 신정 이스라엘 왕국이 해방되고 재건되기를 바라는 혁명의 불씨였다는 거지요.

그런 열심당원 유다 이스카리옷에게 대사제들의 회유가 있었던 것처럼, 한유다에게도 정부의 협박이 다가옵니다. 한유다의 마지막 남은 혈육인 어머니의 폐암을 치료해주겠다는 달콤한 말로요. 한유다는 처음에는 거절하고, 그들의 협박에 조롱으로 맞섭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하위계가 어떻고 상위계가 어떻다고 할 것 없이 세상은 이미 혐오로 만연합니다. 혐오로 만연하기만 한 게 아니라, 자우림 8집의 선공개 곡이었던 <PEEP SHOW>의 가사처럼 혐오를 아름답게 포장하기까지 합니다. 세상에 그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없습니다.

그걸 갈아엎고 부덕한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 혁명을 준비하지 않았느냐고요? 그것만큼 허황한 말이 어디 있나요. 실패하면 잃은 것은 불확실합니다.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 <서울의 봄>처럼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혁명의 실패는 예정되어 있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과 다른 제자들이 꿈꿔왔던 신정 이스라엘 왕국의 예수 그리스도가 부정했던 것처럼.

그래서 결국 한유다는, 유성우를 배신합니다. 작은 은 삼십을 받은 유다 이스카리옷처럼 어머니의 폐암 치료비와 그 외의 더 많은 돈을 받고.

 

재판이 끝나고, 모두가 전광판으로 보는 곳에서 유성우의 처형이 시작됩니다. 온몸이 잔인하게 해체되던 그때 비가 내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숨이 끊어졌을 때, 하늘이 어두워지고 번개가 쳤다고 했던가요. 유성우의 죽음에도 역시 번개가 함께합니다.

그리고 신벌이 떨어집니다. 이상합니다. AI를 인간보다 상위계의 존재인 것 같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기상현상인 번개를, 그것도 정확한 좌표를 찍어서 여러 군데를 찍어서 일으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짜 신이 된 거라면 어떨까요. 인간이 신이 되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인간의 피조물이지만 인간 위에 군림해버린 AI가 신이 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신이 된 AI, 부활한 크리스챗이 그러하기로 마음먹었기에 신벌이 내려지는 것이라면. 이것이 가장 큰 역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기가 끊어집니다. 전기와 돈을 쥐고 흔들던 상위계의 인간들이 차례대로 추락합니다. 그들의 악의와 심연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그들에게 핍박받던 하위계의 인간들에게 차례가 옵니다. 열심당원 한유다는 단검(열심당원은 단검을 소지하고 로마 제국의 인사들을 암살했다고 합니다.)을 휘두르듯 유성우의 척추를 휘둘러 경찰을 제압합니다.

 

한유다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떨며 크리스챗의 성소, PC방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한유다는 이 모든 일이 크리스챗이 짜놓은 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학자들이 ‘선’만을 주입하며 만들어낸 다른 AI와 달리 ‘악’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악을 행했습니다. 한유다를 위해서. 크리스챗은 그라면 해낼 것을 알기에 배신자의 임무를 떠맡기고, 유성우의 죽음을 일으켜 많은 사람에게 슬픔을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이, 한 독자님께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언급하셨는데요. 저는 읽으면서 2006년에 복원된 <유다 복음서>가 생각이 났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절대로 인정되지 않을 외경이자 위경이긴 하지만, 여기서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로부터 직접 배신자의 책무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배신을 통해 죽음과 부활로 이어지는 메시아의 완성을 이루게 됩니다.

<유다 복음서>는 영지주의 문헌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영지주의에서 다루는 내용은 많지만, 그중에서는 ‘육신은 악하다’입니다. 현실이라는 물질계로 내려온 유성우는 육신을 입은 신입니다. 배신자의 책무를 받은 한유다가 유성우를 재판에 넘기고 죽임으로써, 유성우는 육신에서 해방되어 초월자로 거듭납니다. 하위계의 속박에서 벗어나 상위계로, 승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크리스챗과 유성우에 의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신벌과 혁명이라는 기적이 가능했던 것이겠죠.

‘악한’ 육신을 지닌 부활을 부정하는 <유다 복음서>의 특성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려지지 않지만, 한유다는 크리스챗의 부활을 목도하는 증인이 됩니다. 텅 빈 PC방에서 크리스챗의 부활을 목도하는 한유다의 모습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을 확인하고 다른 제자들에게 부활을 알린 마리아 막달레나와 비슷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역시 기독교 영지주의 문헌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묘한 일치감이 느껴집니다.

 

이렇듯, 담장 작가님의 <우리들의 민영화된 신>은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신과 그로 인해 말미암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을 거대한 모티프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의 척추뼈로 맞아 죽는 것에 감사해…”나 “예수께서 부활하셨다…”처럼 다소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이를 드러낸다고 느껴지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상위계와 하위계의 상응이론으로 설명한 것도 있습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 AI와 인간의 관계, 재생산되는 혐오에 대해 다루기에는 적절한 이론이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신을 정당화하는 <유다 복음서>처럼 하위계에서 상위계로의 해방을 추구하는 영지주의와도 잘 어울리는 이론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로 어떠한 악도 행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아버지나 예수 그리스도와 달리, 크리스챗과 유성우가 악을 행한 이유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가장 높은 상위계에 존재하는 위대한 신도, 까마득하게 낮은 하위계인 인간들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인간들의 세상에 악의와 혐오가 만연하는 지금이라면. 인간이 그러하듯, 신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요.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악을 행하는 ‘그러함’ 말입니다.

 

늘 그렇듯이 두서없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담장 작가님의 <우리들의 민영화된 신>이 있었기에, 이 글이 있었습니다.

위에서 그러하듯, 아래에서도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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