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돌아보면 끊어진 것만 같았던 길 끝에 또 다른 길이 있었다. 막다른 골목이라 생각하고 돌아섰던 곳에 사실은 조금만 더 모퉁이를 돌아가면 여러 갈래 길이 나온다는 걸 몰랐다. 그땐 분명 이게 최선인 것 같았는데, 왜 몰랐을까?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이랬으면 좋았겠다, 저랬으면 좋았겠다. 생각한다고 결말을 바꿀 수는 없다. 후회하는 사람은 자꾸만 자신의 과거 행동에서, 타인들이 무심결에 내뱉은 말의 조각에서 단서를 찾는다. 최악의 선택을 했다면 그건 그 사람이 가진 최선이자 그날의 한계였다. 이유를 찾는다고 달라질 건 없다. 스스로에게 그랬어야만 한다고 왜 그러지 못 했냐고 다그치며 올바른 길이 어디쯤이었을지 찾게 되는 이유는, 잘못된 길로 걸으면서 잃어버렸던 소중한 사람들을 찾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폐허가 되어버린 텅 빈 자리에서 서성거리며 떠나지를 못하는 사람처럼.
많은 여운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다. 전작인 <하류>는 판타지 장르임에도 완벽하게 매듭지지 않은 나머지 인물들이 결말 이후 어떻게 되었을지 계속 궁금하고 먹먹했다. 만들어진 이야기라기보단 현실 어딘가에 살아있는 누군가 자기 삶의 일면을 들려주듯 생생하다. 권선율 작가님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에는 그런 힘이 있다.
<행복한 삶>은 액자식 구성의 소설이다. 해선이 연우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현재 시점이 처음과 결말에 배치되어 있다. 사촌 수희 언니가 죽고 해선이 그녀의 딸 연우를 키우게 된 연유를 회상하는 과거의 이야기가 이야기 전체를 이끄는 핵심이 된다.
처음에는 해선이 연우에게 말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말에서야 알 수 있다. 해선은 연우에게 말하지 않았고, 이야기는 자신의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을 뿐이다.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났기에, 해선이 연우에게 말했는지. 말하려다 차마 그러질 못하고 비밀은 끝끝내 묻어둔 채 인생이 끝났을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주인공 해선은 호감형의 인물은 아니다. 타인을 배려하기보다는 자기 마음, 감정을 우선시 한다.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는 이기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게 전부였다면 복잡한 여운은 남지 않았을 것 같다. 이야기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해선이 왜 이런 삶을 살아왔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저 관점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이런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들 사이에 뒤엉켜 있는 감정의 실타래가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아침 드라마 보는 심정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행동과 말들에 어떤 명확한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비로소 과거에서 현재까지 하나로 꿰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순간에 정말 어떻게 될지 결과를 전부 예측하고 확신하며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해선은 그 순간엔 계산보다 진심었을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더 나은 선택들이 보였던 게 아닐까?
뼈아픈 회한을 가지고 잘잘못을 직시하고 있는 해선이 살아온 지난 날을 들려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날에 가장 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과 행동으로 수희 언니를 절벽으로 몰아갔던 해선은, 자신을 엄마로 받아들이고 가족으로 온전히 신뢰하고 있는 딸 연우에게 평생 하지 않을 것이 좋은 말을 꺼내기 위한 선택지를 앞에 두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수희 언니에게 진실을 말했던 해선이,
연우에게 진실을 말하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무덤까지 가져가는 것이 옳았을 비밀을 연우에게 말하게 된다면, 그녀가 얻게 되는 건 무엇일까? 오랜 죄책감에 대해 사죄하고 싶지만 정작 그 대상인 수희 언니는 죽고 없다. 연우에게 대신하는 고해 성사일지 모른다. 해선은 충분히 잘 살아왔고 연우를 통해 행복한 삶을 누려왔기에, 연우를 빼앗는 선택을 함으로 자신에게 벌을 주고 싶은 사람 같다. 너는 진실을 알 자격이 있고 나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 마음은 그럴 수 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림으로 연우의 삶이 얼마나 망가질지에 대해서는 최우선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과거의 그때에도 수희가 받을 상처를 고려하지 못하고 진실을 알게 되면 수희가 나아질 거라 판단했던 해선은, 후회에 후회를 거듭한 후에도 비슷한 지점에 서 있다.
삶에서, 이야기의 간접 경험을 통해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인간상이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착하고 올바르기만 하면 정말 좋겠는데, 세상에는 저렇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어떤 이해 같은 걸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이해한다고 그 사람의 모든 걸 용서하고 상처받을 일도 상처받지 않게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인생에서 저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대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을 이 이야기는 가지고 있다.
<행복한 삶>이란 제목.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제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편이다. 작가님은 왜 이런 제목을 지으셨을까? 제목대로 마냥 행복한 삶은 아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 오히려 해선의 삶은 불운한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해선은 행복한 삶을 살았다 생각하고 있다. 수희와 수애의 삶은 그렇지 않았고 왜 자신은 충분히 행복했다고 생각하는지 고민해 보았다.
해선, 수애, 수희. 이 세 사람 중 누가 행복한 삶을 누렸던 걸까?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화두를 던지는 이야기.
내 인생인데 나는 인생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 생각에 굉장히 공감한다. 행복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일반적으로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잘 통제하고 있다 느끼고 확신을 갖는 사람들이 삶의 만족도가 높고, 스스로를 행복하다 말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환경, 좋은 것들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도 100퍼센트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1+1=2인 하나의 공식처럼 단순명쾌하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이 누군가의 행복이다. 타인이 볼 때에 충분히 행복해 보이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불행하다 여길 수 있고, 누가 봐도 저 사람은 불행하고 불운한 인생을 살고 있다 생각되는 사람인데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 생각할 수 있다. 기쁜 일이 생겨도 크게 불안하고 절망할 수 있다. 안 좋은 일이 연달아 닥칠 때에 그 안에서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이고 따뜻한 감정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행복은 실제 삶의 내용이 어떠했든 자기 확신, 믿음 같은 게 아닐까?
해선이 자신을 행복하다 말하는 이유의 근거.
순탄하지 않았던 해선은 그럼에도 그럭저럭 원하는 방향으로 잘 살아왔다. 연우와 가족이 된 것은 해선이 의도했던 방향이 전혀 아니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었고, 수희 언니의 행복을 가지고 싶던 해선이, 연우를 데려옴으로써 내 행복이 완성되었다며 만족할 수 있었던 걸지 모르겠다. 행복했던 수희는 결과적으로 불행한 죽음을 맞게 되었다. 수애가 결혼할 거라 믿었던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남편이 되어 있기에,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그 잣대 안에서만 자신의 행복을 쟁취해 나갈 수 있던 해선으로서는 나 정도면 괜찮은 삶을 살았어 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행복한 삶>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인물은?
이 질문의 답은 독자님들의 생각에 따라 다를 것 같다. 남편과 해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어 절망했고 불운한 죽음을 맞았더라도, 진실하고 성실하게 주변인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수희가 누렸던 행복의 시간이, 나는 진짜 행복한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해선은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걷어차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그래왔듯, 자신의 삶과 타인의 행복한 삶을 스스로 부서뜨리기 직전의 결말을 맞고 있다. 해선에게 빼앗겼지만 진심으로 원하던 것을 한때나마 누렸던 수애 역시 해선보다는 행복을 더 잘 아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해선은 사랑도, 자신이 뭘 가지고 싶은지도 불명확한 사람이었다. 수희 언니를 좋아했고, 수희와 수애와 친자매 같은 가족이고 싶었고, 언니의 친동생인 수애보다 사랑받고 싶었던 해선은, 자기 잘못으로 수희 언니를 잃게 된다.
해선은 연우에게 고백했을까? 읽고 여러 결말을 상상했다. 말하고 싶지만 끝내 말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결말. 죽을 때가 다 되어서 폭탄 같은 고백을 던지고 가는 결말. 연우가 어린 지금 진실을 듣게 되는 결말. 좀 더 큰 어른이 되어 듣게 되는 결말.
말한다와 하지 않는다의 사이에도 이렇게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연우 역시 상처받기는 하겠지만 완전히 돌아선 상태로 수희와 같은 결말을 맞을 수도 있고, 해선에게 복수하려 할 수도 있다. 많은 방황을 하고 그럴 수밖에 없던 해선의 미성숙함을 이해하고 자신에 주었던 사랑만큼은 진심이었음을 받아들이게 될지. 오래도록 미워하면서도 연우의 삶이 충분히 행복한 삶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지 않을까? 해선이 전부였던 작은 세상을 떠나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 좋은 영향을 받고 다른 행복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은 그 사람이 되어 살아보지 않고는 다 알 수가 없듯이. 최악이 될 선택지를 고르려는 해선과 그 상황을 모르고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연우에게도 앞으로 어떤 많은 이야기가 무수히 펼쳐지게 될지를 궁금해 하게 될 것 같다.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들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