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보다는 로맨스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다.
꼭꼭 숨겨왔던 마음을 고백하는 날이, 하필이면 좀비물의 시작이라니. 주영의 상황을 보고 있자니, 갑작스레 나타난 바이러스로부터의 고군분투기라기보다는 경주를 향한 고백에 놓인 장애물들을 하나씩 뛰어넘는 액션물 같았다.
첫사랑은 가장 마음을 깨닫기 어려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엔 알지 못했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잘 기억나지 않는 과거 속 유일하게 선명한 타인과의 기억, 늘 그 사람을 향해 있던 눈길이, 문득 과거를 헤집다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참신함보다는 적절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풋풋한 설렘에 눈길이 간다.
애매한 온도의 민망함에는 어울리지 않는 필사적인 도망이었다.
선생님은 시험을 보기 전에 항상 하는 말씀이 있었다. 문제를 잘 풀려면 지문을 잘 읽어야 해. 이해가 될 때까지 보고 또 보는 거야.
복도에 누가 씹다 버린 껌이라도 밟은 것처럼 발걸음이 진득거렸다. 늘러 붙어 떨어지지 않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사랑을 자각하는 순간, 그리고 사랑임을 알고서도 등을 돌리는 장면에서의 문장이 마음에 가장 와닿았다.
타임라인이 여러 갈래로 교차되는데, 꼬이지 않고 자연스레 연결된다. 주영과 경주의 과거 이야기와 반장과의 관계에 대한 오해, 학교에서 퍼진 소문까지. 내용은 길지 않지만 그 안의 캐릭터 소모 없이 줄거리 전개가 정갈하다.
좀비화의 1차 증상이 입맞춤이었던 것은 경주를 보호하고자 하는 주영의 본능과 그 뒤의 2차 증상, 후반부에 치닫는 위기에서 느껴질 공포 요소를 조금 더 극대화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이 정말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좀비가 들이닥쳐도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게 처음으로 품은 사랑에 대한 고백이다. 극한의 상황에 치닫고서야 제대로 말하고 마는 것이 첫사랑인 것이다.
경주는 주영을 어떻게 좋아하게 됐을까?
본작이 주영의 시점으로 전개됐다면, 이제는 경주의 감정과 시점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