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잡아먹은 검은 늑대의 관심이 나를 향할 때, 관계는 더이상 동등할 수 없다. 배를 까고 누워 애교를 부릴지라도.
초반 소제목이 흥미롭다. 문제의 원인으로 제시되는 것은 진상손님으로부터 시작해 ‘나’의 과거이자 현재까지 이뤄졌던 가족의 학대, 그리고 다름 아닌 ‘나’. 가족의 지속적인 폭력으로 얻는 정서적 결핍을 물질적으로나마 채우려 하고, 폭력의 원인을 자신에게로 돌리기까지에 이른다. 맨처음 고통의 근원으로 얼굴이 언급되는데, 마침 나타난 ‘벌레’는 얼굴 없는 존재이며 오랫동안 바래왔던 포식자다.
‘나’는 자신을 돌보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방에 정말로 바퀴벌레가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벌레가 실제로 등장하는 순간, 가족들의 말을 내면으로라도 부정할 수 없고 ‘나’의 존재가 완벽하게 정의내려질 것 같아서.
내 방에 있는 쓰레기가 아무래도 밖에서 뭔가를 불러온 것 같다.
가게의 쓰레기는 방안의 쓰레기로, 그 끝은 마치 쓰레기처럼 취급되는 ‘나’, 그리고 쓰레기들 속에서 발견된 벌레는 모두 같은 선상에 놓여진다. 이 관계는 동질감을 형성하고, ‘나’는 기어코 이름을 붙여 애착을 드러내고 만다.
–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괴물은 어떤 이유로 가족을 해치웠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나’가 그의 옆에서 잠을 푹 잤던 이유는, 나라는 존재를 가장 위협하던 이들이 사라졌음에 대한 안도감으로 인해 두려움이 부재했기 때문이며, 이제는 익숙해진 그에게 ‘나를 먹어도 좋아’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일하게 나를 지켜준 이가 늑대인 탓에, 체념의 감정이 두려움을 삼키고 만 것이다.
의존하지 않으면 ‘나’는 살아갈 수 없다. 남보다도 못한 가족이 만들어낸 새장을, 늑대가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버렸다. 어느 한쪽이 손을 놓으면 끝날 관계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으면서도 끝내 놓지 못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살아남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 죽고 있었다.
괴물은 ‘나’의 의지로 생겨난 존재일까?
혹은 때맞춰 찾아온 불청객일까.
급변하는 ‘나’의 어두운 심리와, 슬라임의 세부적 묘사로 인한 공포가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