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에 선 버스, 좀비떼에 에워싸인다면?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좀비 버스 (작가: 1713,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12월, 조회 26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에 있는 좀비, 우리는 왜 이 존재를 계속해서 소비하는 걸까 생각해 본 적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미워하던 사람, 내가 존경하던 사람, 내가 질투하던 사람, 때로는 ‘나 자신’까지도 사람이 아닌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끔찍한 ‘것’이 바로 ‘좀비 바이러스’이기 때문 아닐까.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기에, 나의 어머니이되 나의 어머니가 아니고, 나의 연인이되 나의 연인이 아니게 된 ‘그 존재’를 우린 반드시 죽여야 한다. 죽이지 않으면 ‘죽임 당하기’ 때문에.

그렇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이 단순한 ‘약육강식’ 그리고 강렬한 생존을 향한 원시적 욕구를 ‘문명화된 사회’에 불러오는 존재가 바로 좀비인 것이다. 사회가 문명화된 이후, 우리는 딱히 생존의 문제에 얽매이지 않았다. 물론 양극화는 언제나 사회적 문제이고 지금 이순간에도 굶거나 스스로 극단의 선택을 하거나 수명이 다했거나, 병에 걸렸거나, 사건에 휘말렸거나 하는 등의 사유로 죽는 이들은 있지만 내 눈 앞에 칼이나 쇠붙이, 각종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이는 없단 소리다. 좀비는 바로 ‘그것’을 가능케 한다. 소설 <좀비 버스>의 제목을 보자마자 끌린 듯 읽게 된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출퇴근길에나 일이 있을 때면 평범하게 이용하는 버스 안에서 좀비와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단순히 버스 안에서만 나타난다면 문을 열고 도망가기라도 하겠지만, 버스 바깥을 좀비가 포위해버린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꼼짝없이 포위 당한 채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기도 하다. 용감하면 뛰쳐나가겠지만, 정면 돌파를 한다는 건 마동석 같이 강인한 불주먹을 가지지 않은 일반인에게 참, 어려운 일이다.

이 소설 <좀비 버스>가 흥미로운 것은 도입부터 좀비의 등장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병원을 가기 위해 오전 9시 50분 경 버스에 올라탄 주인공은 열댓 명의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몇 없는 좌석을 둘러싸고 평범한 다툼이 일어나고, 방관하거나 소리를 내지르는 등의 일상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얼마 후 상황은 급박해 진다. 피범벅이 된 여자가 버스 뒷문으로 부딪히고, 버스를 가로막으며 도로를 ‘정체시킨’ 좀비떼가 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은 굳어버린 채 광경을 바라보고, 주인공이 타고 있는 버스 안에서도 ‘생존을 위한 인솔자’가 등장한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좀비물의 전개와 흡사하다. 평범한 일상에 ‘갑작스럽게’ 좀비떼가 나타나고, 사람들은 살아 남기 위해 생존 지식이 조금 더 있는 군인이나 경찰이나 소방관 혹은 특수요원 등의 지시를 따르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저들끼리의 소란, 충돌은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을 잘 보여준다. 힘을 합쳐야 할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욕망, 욕구에 맞춰 행동하고 트히 이런 상황에서는 대의를 위해 ‘소수’를 기꺼이 희생하니까. 버스라는 협소한 장소 안에서 벌어지는 소동극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소설은 예기치 못한 결말로 향한다.

모든 소설이 ‘해피 에버 애프터’란 환상을 그릴 이유는 없으니까 어쩌면 당연하고 또 후련했다. 소설이 마지막을 향해 갈 즈음에 이런 대사가 하나 나온다.

“그것들이 이 버스를 포위하고 있어요. 사냥을 하는 것처럼 몸을 숨기고. 우린낙오자 하나 엇이 전부 죽을 거예요.”라고 한 남자가 속삭인다. 주인공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이 장면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나라면 이 순간에 어떻게 행동할까… 나 역시 답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마지막을 목도하겠지. 이 소설은 극악한 순간에도 자신의 욕망, 욕구, 신념에 맞춰서 행동하고 개인을 위한 이기주의를 당연하게 자행하는 이들을 덤덤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들을 탓할 이유는 없다. 인간은 본디 자신, 개개인이 가장 중요한 존재다. 엔딩이 서늘해서 나는 더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영역에 있는 이야기들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짤은 분량일 때는 섬뜩함으로 맺음해도 좋다. 다만 하나 아쉬웠던 걸 마지막에 꼽자면, 맨 처음에 좀비가 등장하던 ‘여자가 뒷문으로 부딪히는 장면’이 조금 더 보여졌다면 어떨까 한다. 그 뒷 문단에서 주인공이 가만히 광경을 바라보며 에코백을 꽉 쥐는 장면을 그려내는 게 좋았는데, 그 여자 신체의 어느 곳(왼손인가 오른 손인가 볼인가 잘려버린 머리인가 등)이 뒷문의 창문을 강타했는지, 피가 어떻게 퍼져나갔는지를 조금 더 생생하게 보여준다면 조금 더 빠져들 수 있겠다는 아쉬움이 남아서다. 극악한,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만나게 되면 모든 광경이 슬로우모션 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니까.

아쉬움은 아쉬움일 뿐, 좀비로 가득한 도로 한복판에서.. 버스 안에 갇힌 이들 중 하나가 된 듯 집중해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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