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위한 변명 공모(비평) 공모채택

대상작품: 뱀을 위한 변명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soha, 17년 7월, 조회 124

이 리뷰에서 제기하는 논리는 종교적 교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등장인물의 분석에 신학의 논리를 빌려오기는 했지만 이를 통해 신학적인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분석은 소설 속의 인물에 대한 것이며 혹시 있을지 모르는 종교적 교리와의 유사성은 모두 우연입니다. 리뷰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수천년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신이 존재하는지, 또는 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는 토론을 해왔다. 그 중 가장 학문적으로 뿌리 깊은 것이 성서를 바탕으로 한 신에 대한 연구일 것이다. 이 소설에는 성서로부터 따온 다양한 모티브들이 존재하며, 등장인물들 중 일부는 신이 가지는 특성들을 몇 가지씩 가지고 있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의 모티브가 된 성서 속의 존재들을 모두 제쳐두고, 소설 속 이야기만 가지고 등장인물들을 평가해본다면 이들 중 누가 진정한 신에 가장 가까운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신이 가져야 할 조건을 짚어 두고 넘어가보자.

전통적인 성서적 의미에서 신은 적어도 다음 3가지 특성을 가져야만 한다.

  1. Omniscient: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2. Omnipotent: 신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3. Omnibenevolent: 신은 절대적으로 선하다.

그렇다면 우선 에베의 주인이 이 모든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지 검토해보도록 하자. 소설에서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면 에베의 주인이 저 3가지 특성들 중 하나라도 제대로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 그는 ‘나’가 에베에게 호르몬 캡슐을 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고, 스스로 동물을 창조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이며, 주위의 존재들에게 특별히 착한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에베의 주인이 신이 될 수 없다고 섣불리 결론지을 수는 없다. 애초에 이 세 가지 조건들은 동시에 만족되기가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저 3가지 특성들을 모두 가진 신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저 3가지 특성들이 모두 충족된다면 신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절대적으로 선하므로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가장 좋은 일들을 모두 결정해둔 상태이다. 그렇다면 당연한 문제가 발생한다. 왜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는가?

물론 신이 저 3가지 중 한 조건이라도 만족시키지 않는다면 악의 존재를 쉽게 긍정할 수 있다. 신이 몇몇 것들에 대해서는 모르거나, 몇몇 것들은 할 수 없거나, 나쁜 일을 할 때도 있다면 악의 존재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리뷰에서는 그러한 신은 인정하지 않도록 하겠다.

악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반론 중 하나가 자유 의지 반론이다. 이 반론은 3번 항목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세상의 선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악을 충분히 막을 수 있으나 우리의 자유 의지를 지키기 위하여 악을 내버려 둘 이유가 있으며 이것이 세상을 궁극적으로 더 좋은 곳으로 만든다.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에베의 주인에 대해 다시 분석해보면 그는 ‘나’가 에베에게 호르몬 캡슐을 줄 것을 알고 있었고, 스스로 동물을 창조할 능력 또한 있었으나 ‘나’의 자유의지를 위하여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고, 이는 몇몇 생물들에게 악영향을 끼쳤지만 궁극적으로는 좋은 일로 이어질 것이며, 그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나’는 그저 에베의 주인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놀아난 셈이 된다. ‘나’가 자유의지로 행했다고 생각한 일들은 모두 에베의 주인의 예상 범위 내에 있었던 것이다. 마이클이 ‘나’의 팔다리를 자르기 전에 ‘나’에게 한 말들은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해준다.

신학자 존 힉의 경우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그에 따르면 세상의 불완전함은 처음부터 신에 의하여 의도된 것이다. 신은 우리의 자비로운 주인이 아니며, 우리를 안전한 환경에서 애지중지하며 키울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그는 세상의 악을 통해 우리를 단련시키려고 하였고, 이를 통해 우리를 특별하게 키우려고 했다. 이러한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소설의 결말부에 에베의 주인이 동물들을 거친 세상으로 추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한 가지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세계에 존재하는 악이 우리를 죽여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신이 우리를 교육시킬 목적으로 악이 존재하는 세상을 준비해두었다면 너무 지나친 악을 창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염병이나 태풍, 화산 폭발 등을 굳이 만들었어야 했는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면 에베에게 잡아먹히도록 내버려둔 토끼 두 마리는 무슨 교훈을 얻은 걸까? 굳이 ‘나’의 팔다리를 자를 필요까지 있었는가?

몇몇 신학자에 따르면 이러한 문제들은 애초에 우리가 논리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는 신의 뜻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으며 이를 이해할 능력도 없다. 신의 말은 비유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고, 분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막다른 길에 도달한 것 같으니 항복 선언을 하기 전에 소설 속에 다른 신 후보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두 번째 신 후보로 ‘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생명을 창조할 능력이 있다는 것으로부터 ‘나’는 적어도 에베의 주인보다는 2번 항복에서는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제법 괜찮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며 적어도 에베의 주인보다는 더 선하게 느껴진다. 만약 ‘나’를 신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는 1번 항목 또한 만족해야 하는데 이 경우 ‘나’는 앞으로 이어질 모든 고난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결론이 난다.

물론 신의 도덕성을 인간의 입장에서 평가하는 건 우스운 일이지만 이 경우 ‘나’를 희생하는 신이라고 정의해볼 수 있겠다. 이 경우 ‘나’는 모든 고난을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절대적으로 선하므로 그 모든 것들을 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들은 세상의 선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에베의 주인이 돌아오기 전에 마이클과 협력하여 동물들을 모두 탈출시키는 결말도 가능했다. ‘나’가 신일 경우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나’의 고난이 에베의 주인의 아들의 여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었다면 ‘나’가 고난을 알면서도 겪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에베의 주인은 세계에 존재하는 악의 상징이 되고, 에베의 주인의 아들은 이와 대비되는 선한 존재가 된다. 선이 존재한다는 것은 악이 존재해야만 알 수 있다는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에베의 주인이라는 형태로 악을 세상에 남겨둘 이유가 충분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가설들을 세운다 해도 악이 너무 지나치다는 공격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글이 막바지로 흐르면서 1번 항목과 2번 항목에 위배되는 상황과 독백이 등장하기도 하고 말이다. 1인칭 서술을 이용한 트릭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애초에 ‘나’가 신이라고 할 만한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매끄러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후보 한 명을 간단히 소개하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마이클의 계획안에 있던 것이면 어떨까? 그는 ‘나’가 에베에게 호르몬 캡슐을 주는 것을 내버려 두었고, 에베의 주인에게 동물들을 추방한다는 선택지를 제시했으며, ‘나’가 황무지로 나간 다음에도 계속 교류를 이어나갔다. 소설 속에서 그는 에베의 주인처럼 비도덕적인 일을 하지도 않았고, ‘나’처럼 고난을 겪지도 않았다. 신에 대한 3가지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신에 가장 가까운 것은 마이클이 아닐까?

물론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작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해석할 만한 여지가 많은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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