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콜세지는 영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Cinema is a matter of what’s in the frame and what’s out.
분량제한이 있는 경우 이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작가는 짧은 분량 속에서 캐릭터들을 소개하고, 그들을 결말까지 이끌어 나가야 하며 그들의 행동에 논리적인 개연성을 부여해야 한다. 모든 것을 설명할 만한 시간은 없고, 어쩔 수 없이 많은 부분을 생략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를 짧게 만들 수 있는 걸까? 예를 들어 남녀가 서로 사랑하다 이별하고, 남자가 노을을 바라보며 여자를 회상하는 결말을 맞는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이를 다음 문장 3개로 서술해 볼 수 있다.
“나는 그녀와 헤어졌다. 그녀와 함께 보았던 노을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눈물이 흘렀다.”
이미 상당히 짧지만 독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할 수 있으며, ‘나’의 감정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짧게 만든다면 어떨까?
“그녀와 함께 보았던 노을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눈물이 흘렀다.”
이 경우 독자는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함께 보았던’으로부터 ‘나’가 ‘그녀’와 헤어진 상태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추론은 그 후의 ‘눈물을 흘렀다.’에서 ‘나’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단서가 된다. 이 정도 선에서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비슷한 해석을 내놓을 것이다. 여기서 더 짧게 줄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노을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눈물이 흘렀다.”
이제 독자들은 ‘나’가 왜 이런 감상을 내놓았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진다. ‘여전히’라는 말과 ‘아름다웠다.’라는 과거형 동사를 볼 때 ‘나’의 심정을 예상할 수는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어떤 식이든지 이별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대중 매체를 통해 학습되어 있는 이미지의 힘이다.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 또는 비슷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이미지만 보고도 서사를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문체는 여기서 다른 방향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핏빛 노을을 보았다. 눈물이 흘렀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나’의 행동과 ‘핏빛’으로 수식되어 더욱 강렬해진 이미지뿐이다. ‘핏빛’이라는 말을 집어넣지 않았다면 독자들은 이별에 대한 상투적인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핏빛’이라는 수식어는 보통 사람들이 노을에 대해 떠올리는 비슷한 경험들과 어긋나 있고, 매우 좁은 갈래의 이야기에만 적용될 수 있다. 수식어는 이미지의 해석의 여지를 줄여놓고, 작가는 짧은 글로도 정확한 서사를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독자가 그러한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전 지식이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는 이미지와 서사를 함께 볼 수 없게 되고, 이야기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 글은 이처럼 강렬한 이미지와 인물의 행동으로 이어진다. 등장인물들은 나름의 행동원칙으로 움직이지만 독자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등장인물을 인간으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단서들은 거의 주어지지 않으며, 그들 각각의 동기 또한 모호하다. 작가는 총과 사격술, 전투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하지만 등장인물의 내면에 대해서는 독자에게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다시 처음에 서술했던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에 대한 정의로 돌아가 보자. 그의 말을 소설에 그대로 적용시켜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지 않을까에 대한 문제이다.
만약 쓰지 않는다면 저자의 의도는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중요하지 않거나, 아니면 쓰지 않아도 독자가 알 수 있거나 둘 중 하나이다. 이러한 장르를 직접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지에서 서사를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생략되어 있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장르에 대한 많은 간접 경험을 한 사람일 경우도 마찬가지로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작가는 자신이 의도했던 정확한 이미지들만 독자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면 독자가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솔직히 어려웠다. 이러한 장르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이미지들을 따라가는데 벅찼던 부분들도 있었다. 직접 이미지를 보여주고 들려주며 편집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자세하게 알려주는 영화와는 다르게 소설은 독자가 이야기를 잘 이해하기를 그저 믿어줄 뿐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소설의 형태로 잘 이해하기에는 아직 내 경험이 부족한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연 설명을 길게 늘이면 문장에서 느껴지는 속도감이 사라져 장르적 재미가 사라질 것 같다. 어쩌면 현건과 등영, 경사의 마지막 씬만 가지고 소설을 썼으면 어땠을까? 대사 속에 인물들의 간단한 동기들만 집어넣고 하이라이트에서 바로 시작했다면 이미지에 의존하는 서술 방식이 더 빛을 발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