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보다도 짧은 글을 엽편이라고 합니다. 단편의 정의가 부정확한 것처럼, 무엇이 엽편인지에 대해서도 당연히 정해진 정의가 없습니다. 굳이 제가 엽편으로 간주하는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번개처럼 내려치는 충격일 것 같네요. 다른 어떤 소설과도 다르게 엽편은 독자를 휘어잡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에 남을 수 없으니까요. 제한된 지면 아래에서 이야기를 너무 길게 끌어나갈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유화선의 사례’는 굉장히 정석적인 엽편입니다. 물론, 이것이 엽편으로 분류 가능한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요. 제가 이것을 엽편으로 분류한 것은, 이 소설이 강력한 단 하나의 심상을 가지고 빠르게 휘몰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아직도 이 소설을 읽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반드시! 이 소설을 읽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소설은 신체강탈자와 그를 인터뷰하는 사람 사이의 대화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신체강탈자라는 측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신체강탈자는 우리의 신체를 강탈하겠죠. 다만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인터뷰라는 형식을 가지고, 우리에게 뿌리고 있는 압박감입니다. 마치 나 스스로가 이 ‘신체강탈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압박감. 그 압박감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져 옵니다.
이 소설은 신체강탈자와 그를 연구하는 연구자 사이의 대화를 주제로 하고 있으며, 연구자는 연구를 위해 신체강탈자가 자신을 지배하는 것을 용인합니다. 그렇게 연구자는, 더 나아가서 소설을 읽고 있는 우리는 신체강탈자에게 육체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언젠가 벌써 육체를 빼앗긴 다음이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아주 쉽게 독자의 머릿속에 꽂아넣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