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동화 같기도,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동양 판타지물 같기도 하다.
뜯어보면 처음부터 ‘볏’, ‘부리’ 등과 같이 캐릭터들의 특징을 묘사해주는 힌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음에도,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는 언젠가 동화에서 읽었던 ‘불개’라는 소재에 대한 익숙함과 스토리의 높은 완성도 때문이었다.
왕에 대한 충성심이 아닌 단지 공주의 울음을 그치기 위한 목적으로 해를 찾아나서겠다는 지술의 태도로 보아, 공주와 지술의 관계는 사랑이 아닐까 짐작했다. 하지만 지술이 아이를 품고 있는 어미였다는 점에서 일말의 새로움을 느꼈고, 그 관계의 정체란 애틋함과 연민을 포함한 사랑보다 더 큰 개념의 감정이 아니었나 싶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야기꾼의 이름인 지술은 슬기로운 꾀라는 뜻을 가진다. 이름에 걸맞게 그는 자신에게 찾아올 시련도, 죽음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기다릴 공주를 위해 끝을 택한다.
아재비들의 숲으로 들어간 어미의 자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또다시 아침나라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스승들의 가르침으로 수풀 속에 숨어 밤나라를 어슬렁거리기에 호랑이들을 산에서 발견하는 것이 드문 것일까.
아침나라와 밤나라라는 이름 또한 아침에 생활하는 동물들과 저녁에 활동을 시작하는 동물들로 구성해놓은 부분에서, 짧지만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벌레를 뜯어먹는 스승의 정체는 동화에서 흔히 보지 못한 사마귀라는 점에서도 흔함을 탈피하는 변주를 느꼈다.
기존에 존재하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보다 어렵다 생각해왔는데, 본작은 그저 태초부터 그렇게 살아왔을 거라 인지했던 동물들의 특성에 개연성을 부여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정체가 마지막에 정확한 명칭으로 공개되는 것에서 나오는 놀라움이 있다.
이들을 둘러싼 세계가 달리 보인다. 수탉의 목청큰 외침이 원망스럽고, 암탉의 눈빛을 들여다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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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붉은 관을 쓴 수탉들은 해가 뜨면 까닭 모르게 무섭고 서러워 웁니다.
사마귀들은 버마재비라 불리며 가끔 해를 향해 톱날을 번뜩 세웁니다.
범들은 숯으로 그린 듯 까만 무늬를 태중에서부터 새기며 납니다. 가끔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며 언제고 태양을 물 연습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암탉들은 울지 않고 무언가를 기다린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