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지독히 오랜 꿈을 깨다 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신입사원 – 상 (작가: 이시우, 작품정보)
리뷰어: 글 쓰는 빗물, 23년 11월, 조회 80

일상과 비 일상의 경계를 넘나들다. 공포 소설에 흔히 붙는 이 수식어는 이시우 작가의 작품세계와 특히 잘 어울린다. 작가의 공포 경 장편 소설 <신입 사원>은 과천의 인적 드문 그린벨트 지역 한 수상한 건물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과천과 미군부대, 그리고 핵 같은 키워드가 얽힌 오래된 도시괴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한다. <신입 사원>이 그려내는 도시의 정경은 실제 과천과 완전히 닮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무엇보다 과천과 닮아있다. 그 공터 한 가운데, 주인공 세일이 취직한 정방형의 일터는 전혀 일반적인 회사로 보이지 않지만 그곳은 또한 너무나도 직장다운 곳이다. 작가의 시선이 이 나라 안에서 과천이라는 도시가 갖는 위치, 사회에서 회사가 기능하는 방식을 이미 깊이 궤 뚫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는 이 기묘한 환상에 기꺼이 몰입한다.

 

이 회사, 사람을 잘못 뽑았네. 정부기관에서 그래도 되는 거야? 고백컨대 소설의 마지막을 마주한 내 머릿속에 남은 감상은 이러했다. 세일에게 맡겨진 업무는 다만 시계 바늘이 움직이면 손잡이를 당기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주관적 가치 판단을 개입시켜 행동했을까? 세일에게 그간 주어진 엄청난 특혜들은 위기 순간 희생과 위험을 담보로 합의된 것일진대 그는 어째서 그것을 누린 후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나의 질문은 소설을 다시 톺아보며 다른 쪽으로 확장되었다. 매뉴얼에 불합리와 비 윤리가 개입할 때 직업인으로서 마주하는 딜레마 앞에서, 언제나 간단한 답을 내리는 것이 과연 맞는 길일까? 사회를 위한 희생을 대가로 보상을 약속할 때 그 내용은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기관은 세일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것이란 판단 하에 그를 뽑았고, 결정적 순간 그는 그것을 배반했다. 이 사실을 더듬으며 새삼 깨달았다. 세일은 적절히 뽑힌 신입 사원이 아니라, 꿈꾸는 자를 깨우는 바로 그 순간을 위해 적합하게 준비된 사람이라는 것을.

 

‘꿈꾸는 자’라는 코스믹 호러적 존재는 이 소설을 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소재다. 세계는 잠들어있는 이 자의 꿈 속 부산물일 뿐이다. 자, 그렇다면 꿈꾸는 자는 누구인가. 물론 이것이 전혀 일러지지 않기 때문에 <신입 사원>은 깊은 공포와 강렬한 문학적 경험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나 나는 지하에 잠들어있다는 그 꿈꾸는 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이 사실 하나는 알 것 같다. 어쩌면 세일이 바로 꿈꾸는 자라는 것을. ‘꿈꾸는 자’는 다름 아닌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요셉이라는 인물을 형용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성서 속 등장인물이지만 그는 신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보다, 끝없이 꿈꾸고 질문하며 노예의 삶을 거부하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더 자주 발견된다. 그가 최초로 탈출한 죽음과 억압의 장소, 고향에서 그를 살해하려 든 형들은 어린 그를 조롱하듯 불렀다. ‘보라, 저기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이 멸칭에는 간신히 숨기려 애쓰는 두려움이 깊이 배어있다. 꿈꾸는 자가 꿈에서 깨어나면 이전의 세계는 끝나고 새로운 질서가 온다. 질문하는 원숭이가 되어 낙원을 배신하고 밸브에서 손을 뗀 순간, 세일은 비로소 지독히 오래돼 고귀한 현실이라 믿었던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안온한 역사와 세상이 파괴된 그 순간, 꿈꾸는 자가 꿈에서 깨어나 꿈의 부산물들을 버린 순간 거기엔 무엇이 나타날까. 세일과 김 노인이 차마 꿈꾸는 자의 꿈을 위해 던질 수 없던 것들을 세어본다. 장엄한 지혜로 가득한 꿈에서 빠져나오면, 작고 생생하고 날카롭게 푸른 아침이 기다린다. 아기의 옅은 울음소리와 동거인의 손금과 미약하게 사그락거리는 잎사귀 같은 것 말이다. 깊은 꿈에 빠져든 세일도 이를 잊지 않고 깨어났을까. 영영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시계바늘도 언젠가는 움직이고 아무리 잠재우려 애써도 꿈꾸는 자는 깨어난다. 그때 우리는 작가가 펼쳐보인 이 풍경 앞에 겁에 질린 목소리로 경외하며 수근거린다. 보라. 저기,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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