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적으로(라고 썼지만 많은 분이 동의해주시리라 믿는데), 추리/스릴러 소설은 두꺼워야 합니다. 적당한 분량으로도 빼어난 완성도와 재미를 주는 작품들이 있지만, 그런 작품을 읽을 때면 컵밥 용기에 담긴 국밥을 보는 것처럼 섭섭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국밥은 역시 커다란 뚝배기에 넉넉하게 담겨 있어야 제맛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600페이지가 넘는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은 책을 쥐는 순간부터 만족감을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껍고 재미있는 소설과 침대, 한가한 오후. 좀처럼 포기가 안 되는 조합입니다.
2.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의 배경은 묵진이라는 도시입니다. 위치는 경상도 해안가 어디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지명입니다. 자연스레 「무진기행」의 무진이 떠오르네요. 실제로 존재하는 도시 같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지명을 사용하는 방식은 여러 효과를 얻기 좋습니다. 우선 친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주고, 해당 작품만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실제 지명이 주는 고정관념이나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죠. 더 나아가면 배경 자체가 작품의 테마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뿌연 안개로 전후 세대의 가치관 혼란을 표현했던 「무진기행」처럼요.
묵진은 어떤 도시일까요. 그곳은 항구 도시이고, 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합니다. 선원으로 일하러 온 외지인들이 드나들고, 그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집창촌 육사골목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발전했으나 지금에는 다른 항구들에 밀린 상태이고, 성인오락실과 유흥업소로 그득합니다. 쇠락한 듯하면서도 묘한 활기가 감도는 곳입니다. 묵진의 성격은 묵진에 관한 우스갯소리에서 드러납니다.
“일단 들어봐. 묵진에 소산포라는 곳이 있는데, 거긴 배 들어오는 시간이 되면 노래를 틀어줘. 곳곳에 스피커를 틀어두고 말이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알지? (중략) 그래서 묵진 사람들은 십 년인 넘는 동안 그 노래만 들으면서 아침을 맞는 거야.
(중략)
날은 덥고 연설은 지루하고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서 지쳐 졸기 시작했어. 무려 한 시간이나. 이제 공연을 시작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지쳐있으니 힘을 좀 내야겠다. 분위기를 띄워야겠다 싶어서 행사 관계자가 노래를 틀었어.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행사 시작을 알리기에 제격이겠다 싶었던 거지. 노래를 틀자마자 사람들이 깨. 그런데 그냥 깨는 게 아니야. 누구든 옷을 갈아입는 시늉도 하고 밧줄 당기는 자세를 취하는 사람도 있고. 일하러 나갈 준비를 하더라는 거지. 정말로 일하러 가는 사람도 있고. 그제야 뭔 행사가 이 모양이냐고 화내는 사람도 있고.”
단순히 어둠과 욕망이 뒤섞인 항구 도시답지 않은, 기묘한 근면성이 인상적입니다. 묵진이란 공간 자체가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그런 배경과 어울리게, 소설의 문장도 차갑고 단단합니다. 힘찬 직유를 활용하고, 생의 더럽고 비루한 부분을 거침없이 클로즈업합니다. 문장은 공간과 어우러져 하드보일드, 또는 느와르적인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입니다.
땀으로 범벅이 되고 통증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지아를 마주했다. 그 너머에서 뭔가 끓어넘치고 있었다.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곪은 여드름처럼 터져 나오는 존재가 있었다. 목을 가르고 두개골을 열어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려는 중이었다. 지아는 점점 통제권을 잃는 걸 느꼈다. 선처럼 얇은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3.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의 주인공은 염지아라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5.18 민주화 운동으로 암시되는 사건을 통해 어머니를 잃고, 그 트라우마로 혜수라는 또 다른 인격이 생겨납니다. 이 소설의 주요 서사는 혜수가 19년 동안 몸을 지배한 상태에서 벌인 일들을 지아가 추적해가는 과정입니다.
지아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19년의 세월이 통째로 사라졌고, 눈앞에는 시체가 놓여 있으니까요. 거기에 웬 미친 여자가 찾아와 ‘빨간 수염’이 기다린다고 소리치며 습격하는 사건까지 벌어집니다. 지아는 혜수가 벌인 일들을 알아내야만 합니다. 그래서 혜수가 19년 동안 머문 묵진을 찾아갑니다.
이 소설의 재미는 주인공이 또 다른 인격의 행적을 추적해가는 데 있지만, 서브 주인공들이 뒤얽힌 서사 구조 또한 흥미진진합니다. 전직 형사이자 프리랜서 기자인 강규식은 19년 전 폭행 사건을 벌이고 홀연히 사라졌던 지아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을 품습니다. 그는 은밀히 지아의 뒤를 캐고, 그녀가 묵진에서 벌이는 일들을 감시합니다. 지아를 찾아왔던 미친 여자(진희)의 아버지인 관훈은 젊을 적 군대에서 당한 사고로 얼굴에 화상을 입었고, 그 자국에서는 빨간 수염이 돋습니다. 그는 혜수가 19년간 묵진에서 벌인 일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아는 혜수를 추적하고, 그런 지아를 규식이 추적합니다. 혜수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는 관훈은 가만히 기다리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모종의 이유로 지아의 추적을 방해합니다. 그리고 혜수에 대한 강렬한 증오로 가득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정교하게 설계된 인물 관계와 구성 덕분에 추리는 숨 가쁘게 이어집니다. 지아가 마주한 시체는 무엇인가? 혜수는 묵진에서 19년간 무슨 일을 했으며, 어째서 그런 일들을 벌였을까? 묵직한 이 두 줄기의 미스터리는, 6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의 뼈대로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4.
(여기서부터는 결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품을 읽지 않으셨다면 건너뛰어주세요.)
염지아/윤혜수의 이중인격은 이른바 ‘지킬 앤 하이드’테마로, 픽션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입니다. 이중인격은 선과 악의 대립 또는 인간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데 유용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런 용도로 쓰인 것 같지 않네요.
이중인격 소재에서는 인격을 분열시킨 사건이나 계기가 중요합니다. 보통은 거기에 작품의 핵심이 들어있기 마련입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는 지킬 박사의 과학적 사고와 위험한 실험이 이중인격을 촉발했다면, 이 소설에서는 역사적 사건이 초래한 비극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5.18과 광주의 비극입니다.
다소 둔하고 유약한 지아와 달리, 혜수는 똑똑하고 민첩하면서 악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아를 따라 혜수의 행적을 추적하다 보면, 자신을 거두어준 은인의 회사를 망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그 가족까지 처절하게 파멸시킨 처사에 아연하고, 의아해집니다. 혜수는 왜 그랬던 것일까. 단순히 지아와는 다른, 악으로 똘똘 뭉친 반쪽이기 때문일까.
관훈이 지아의 어머니를 죽인 군인 독개구리였다는 결말이 밝혀지는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집니다. 혜수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그릇된 역사와 폭력에 대한 반작용이자, 복수입니다. 결말에 다다른 순간에 혜수의 의미 또한 반전됩니다. 혜수는 세상이 지워버린 지아의 참된 모습이고, 고통 속에서도 사랑받길 원하던 자아였습니다. 지아는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습니다. 선이 악을 평정하지도 않았고, 악이 선을 집어삼키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훌륭한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분열과 복수에 관한 이야기가, 묵진이라는 공간이,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에 대한 은유이지 않을까. 상처와 어둠을 덮어놓고 달려온 시간이, 결국 상처와 어둠을 지우지 못했다는 우울한 진실을요.
해수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지아는 거울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낡은 근육을 들어 올려 동그란 주름을 만들어보았다.
거울 속 얼굴은 촛농처럼 녹고 있었다.
몹시 슬프고 가난한 얼굴이었다.
5.
즐겁게 책장을 덮어도 늘 아쉬움은 남습니다. 아쉬움의 색깔은 여러 가지입니다. 이야기가 끝나버렸다는 아쉬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 소설이 선택한 방향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단점에 대한 아쉬움… 그 아쉬움들은 분명히 구분될 때도 있고, 이리저리 뒤섞여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기준으로, 그것들을 구분하기 어려울수록 좋은 소설입니다.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를 읽는 동안 대부분 흥미진진했지만, 그렇지 못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이 조금 답답하거나 어리둥절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게 어떤 부분이냐고 묻는다면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어째서일까, 생각하다 보면 한 가지 짚이는 부분은 있습니다. 주인공 염지아의 동기 문제입니다.
지아의 인생은 비극으로 가득합니다. 군인에게 어머니를 잃었고, 가족은 풍비박산이 났고 고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트라우마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인격이 생겼고, 그 인격 때문에 멀쩡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 인격은 지아의 인생을 망치려고 안달이 나 있습니다. 아버지는 지아를 학대하면서 그게 대응책이라고 믿습니다. 겨우 다니던 직장도 혜수 때문에 잘리고, 동료의 손에 연필을 꽂은 폭행범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년 동안 기억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시체가 있습니다.
작품의 색채에 걸맞은 설정이란 생각은 들지만, 과연 이런 인물에게 묵진을 휘저을 만한 동력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혜수의 기억이 내재해 있으므로 동기는 충분하지만(시체는 바로 그녀의 혈육이니까요), 독자의 입장에서는 결말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왜 묵진 가야만 하는지, 왜 혜수의 행적을 밝혀야 하는지. 이유는 있지만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좀 더 지아가 삶에 애착을 가질만한 설정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이복동생 병준의 존재도 다소 애매합니다. 그는 묵진에서 지아와 동행하며 전개를 부드럽게 해주지만, 역할은 크지 않습니다. 왓슨처럼 탐정의 보조이자 관찰자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무능한데다가 하는 짓도 밉상입니다. 전개의 측면에서도 규식에게 정보를 흘리는 것 말고는 쓰이는 일이 드뭅니다. 소위 ‘발암캐’인데, 그런 것치고는 비중이 커서 다소 군더더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병준 때문에 이따금 긴장도 풀고 웃음 짓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바보 같은 친구들이 대개 그러하듯이요. 아, 역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