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탈출게임 (작가: 박윤윤,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23년 6월, 조회 38

리뷰를 쓸 때는 가능한 한 제가 느낀 감상을 솔직하게 쓰자는 주의입니다만, 그럼에도 말하기 주저되는 때는 있습니다. 이를테면 장르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표출해야 할 때가 그런데, 이 리뷰글도 그런 이야기입니다.

저는 미스터리물을 좋아합니다. 그런 저는 몇 달 전에 ‘유리탑의 살인’이라는 미스터리 소설을 읽었습니다. 유리탑은 본격추리지 않느냐고 의문이 드실 수도 있는데 조금만 더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수작으로 평가받기도 하고, 예전부터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했기에 저는 기대감에 부푼 채로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저는 초반부를 읽으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묘한 배경, 수수께끼의 사건, 밀실, 불가능 범죄 등의 자극적인 요소들이 제시되는데도 제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재미없다!’

놀라울 정도로 전혀 흥미가 안 생겼습니다. 책을 덮을 정도로 재미없었던 건 아니고 그저 초반부 수백 페이지 내내 대체로 미적지근한 기분이 이어진 것뿐입니다만, 분명 제가 느낀 감정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중후반부는 재밌었습니다). 자기 전에 읽었을 때 잠을 깨게 만드는 책과 그냥 책을 덮고 자게 만드는 책이 있다면 유리탑의 초반부는 후자에 해당하는 책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작품뿐만 아니라, 저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류의 작품에 대해 열광한 일이 최근 들어 잘 없었습니다.

다만 이게 단순히 저 혼자만의 호불호라고만 볼 수 없는 게, 작가 친구들이 했던 얘기였나? 아무튼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화는 길었지만 정리를 하면 한 줄로 요약이 됩니다.

‘요즘 독자는 궁금증 보다는 기대감을 원한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독자들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전개’를 ‘궁금해하지 않게’ 되었으며, 소설의 내용이 미스터리어스하게 진행돼봤자 독자들은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태도로 본다는(혹은 그대로 책을 덮거나) 얘기였는데, 듣고 보니 제 얘기였습니다. 예전에는 ‘낯선 천장이다’라는 도입부에도 흥미진진했지만 이제는 그걸 신선하게 느끼는 독자는 거의 없다는 얘기가 이 느낌에 가깝겠네요.

한편으로 최근에 흥행한 드라마 두 개가 떠올랐습니다. 재벌집 막내아들과 더 글로리인데, 드라마를 거의 안 보는 편인데도 제가 알 정도니 각각 당해의 최고 화제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말하자면 ‘가장 최첨단의 재미공식’을 가진 작품이라고 할 만할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만약 두 작품이 미스터리에 치중했으면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이를테면 더 글로리의 각본가가 갑자기 변경되어 제가 각본을 이어받게 됐다면, 저라면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까 싶군요. ‘주인공이 복수를 시작하려는데, 복수의 대상이었던 가해자들이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 자신의 복수 대상을 먼저 처리했는지, 그 사람의 정체를 추적하는 전개입니다.’

기묘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대체 누가 그런 짓을, 어떤 이유로 저지른 것일까요? ‘실수’라고 예를 든 전개입니다만, 제 자신은 이런 전개에도 꽤 마음이 동합니다.

‘작가로서는’ 말이죠.

제 3자의 입장에서 제가 제 버전의 더 글로리를 봤다면 흥미를 못 느꼈을 겁니다. 아마 지금처럼 흥행하지도 못했을 거고요.

저는 더 글로리가 본질적으로 재벌집 막내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초인에 가까운 수준으로 조사를 하고 계획을 짰기 때문에 주인공이 가진 지식이 실질적으로 회귀물의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미래지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독자는 주인공이 무엇을 어떻게 할지 기대합니다. 아무도 회귀라는 수수께끼의 현상이 무엇인지 조사하는 게 작품의 메인 스토리가 되길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그 나름의 재미가 있을 것임에도 더 재밌는 건 궁금증보다는 기대감이니까요. 라는 느낌의 얘기를 했었고 저도 그 얘기에서 상당 부분 배워가는 점이 있었습니다.

이상으로 본론을 말하기 위한 일종의 알리바이 진술을 마치겠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작품에 대해 말하자면, ‘이미영, 30세,’ 에서 아 그건가. 하고 눈치 챈 거 외에는 뒷내용은 대체로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잘 숨겼다고 할 수 있는데, 하지만 진상이 드러난 이후에도 ‘그럼에도 딱히?’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보다 문제인 건 제 안에서 주인공에 대한 감정선 형성이 안 됐다는 점이고요.

이 작품이 선택한 방향도 틀린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기대감을 주는 주인공 설정’이라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 요소이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를 얻는다고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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