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을 키워드만 놓고 보면, ‘진부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익숙한 소재들이다.
이중인격, 기억상실, 다른 인격이 저지른 범죄, 기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하지만 뻔한 소재를 써서 뻔하지 않은 전개를 이어나가면, 뻔한 소재 자체가 서술 트릭으로 작동해서 오히려 신선함을 낳기도 한다.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나뉜 인격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우고, 서로를 미워한다는 설정은 다중인격이 소설의 소재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있었을 흔한 소재다. 하지만 ‘다른 인격이 ‘나’를 미워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서 나를 범죄자로 만들었을 것이다.’라는 주인공의 추측에 의심 없이 동의했던 이유가 바로 흔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소설 후반까지 ‘혜수’가 ‘지아’를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을 거란 프레임에 지아와 함께 갇혀 있었기에, ‘혜수’와 죽은 ‘다은’의 관계가 밝혀지는 부분에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설에서 망가진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여럿 제시되는 것도 흥미로웠다. 철순-지아의 관계, 관훈-진희의 관계는 부모 자식간의 애정이 존재함에도 지독하게 비틀려 있다. 그나마 원만했던 혜수-다은의 관계는 다은의 죽음으로 파탄을 맞았다. 부모가 자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특히 자식의 잘못된 점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반전이 나오기 전까지는 뻔한 이야기인가 했지만, 반전이 밝혀진 이후에는 남은 분량 내내 속절없이 소설의 전개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스릴러 소설로 읽었지만, 추리소설로 접근해서 읽어도 재미있는 소설일 것이다.
다만 이 소설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남자 작가가 쓴 소설스럽게도 여성 주인공을 망가뜨리는 도구로 성관계니 사창가니 하는 요소를 구태여 집어넣은 것이다. 성적 문란을 타락의 도구로 사용하는 장면 없이도 충분히 잘 풀어나갈 수 있는 작품이었을 텐데, 굳이 성적인 요소를 집어넣은 것이 한계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