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채기는 작았지만 시큼하니 오래 갔다’라는 문장이 있다. 소설 <울지 않아>에서 주인공 정우가 당해 온 폭력을 가장 잘 설명하는 한 줄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있는 학창시절, 마냥 산뜻한 ‘추억’ 정도는 아니다.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라는 3가지 입장 중 어느 하나에는 속하게 마련이니까.
드라마 <더 글로리>가 나오면서 학폭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잠시뿐이었다. 여전히 학교 안에는 가해자와 방관자, 피해자가 있고 그들만의 ‘생태계’는 꽤나 삭막하게 돌아간다. 이 소설을 간단하게만 소개하면 교실에서 군림하는 무리의 타깃으로 ‘울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한 남자애가 잭나이프 사건을 계기로 울게 되는 이야기다 담백한 문장 안에 서늘함이 깃들어 있다는 게 이 소설의 장점이다. 심리 묘사도 섬세한 편이었고, 짧은 단편에 가독성이 좋아 끝까지 몰입하며 잠시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교복 입었던 때가 좋았다는, 중고교 시절 친구가 ‘인생친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의아했다. 그 시절의 기억은 내게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물론 좋은 인연 하나는 남았지만, 그 외에는 안개가 낀 것처럼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시간을 학교 안에 갇혀 지내야 했기 때문 아닐까. 그 안에 꼭 ‘위계’가 만들어지고, 군림하며 분위기를 만드는 아이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니까. 그 생태 안에서 만들어진 3가지 신분(가해자, 피해자, 방관자)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바뀐다. 누구나 가해자이며 피해자이며 방관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참 싫었다. 긴 터널과도 같던 시절을 지나오며 내겐 ‘세상 사람들은 다 나 같지 않다’는 진리가 남았다. 내 친절이 누군가에겐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될 수 있고 반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서늘한 진실 역시 마찬가지다.
그 시절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들려 왔다. 왕따 피해를 당했던 아이가 의자를 가해자에게 집어던졌다거나, 맨손으로 유리창을 깨부수는 바람에 팔 전체에 유리가 박혔다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거나, 누군가의 책상 서랍이나 사물함에 들어 있는 쓰레기 따위의 것들 말이다. 그날들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살아 있으면 많은 것들이 나아진다는 거였는데… 그날의 스트레스가 남긴 상처들은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상처가 났더라도 흉터는 남으니까. 아주 무딘 칼날로 오래도록 파헤쳐 진 상처처럼 아주 깊은 흉이 남아서 아직까지도 아린다. 이렇게 솔직할 생각은 없었는데 리뷰를 쓴다고 해놓고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이 소설의 결말이 너무도 판타지여서 그런 것 같다.
이 소설의 결말을 보고 뒷맛이 씁쓸한 것은 ‘그럴 리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저러한 판타지적인 결말을 맞이하려면 주인공과 반 학생들 사이에 ‘라뽀’ 관계나 동질감이 형성될 만한 에피소드가 좀 더 필요했을 거 같은데 분량상 표현되지 않아서 더 그렇기도 할 것이다. 동화적인 결말은 좋지만 그것을 뒷받쳐줄 만한 감정선과 서사가 없다면 당황스럽게만 느껴지기 마련이다. 정우에게 따스한 미래를 주면서도, 현실적인 결말로 가려면 뒷이야기는 어떻게 쓰여지면 좋을까. 조금 더 분량을 늘리게 된다면 많은 게 표현될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었기에 결말에 대한 생각도 더 많이 할 수 있게 했다고 본다.
최근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 번의 반격은 필요해. 나를 위해서” 라는. 어차피 말을 해봐야 소용 없다 생각해서 참다가 폭발해서 나는 학창시절에 몇 가지 행동을 했었다. ‘행동’했기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소심하게나마 그들에게 보여줬기에 나는 ‘억울함’이 덜하다. 갑갑하면 의자라도 던져야 하고, 돌멩이라도 던져야 하며, 쥐어터지더라도 몇 방은 날려야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 같은 애들까지 이해하고 품으려 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정우와 소민이에게 해주고 싶다. 세상엔 사람이 아닌, 사람의 ‘탈’을 쓴 ‘무언가’들도 존재한다. 그들을 대하는 방법은 그들과 ‘똑같아질 수도 있다’라는 것을 보여줘서 ‘내가 귀찮은 사람’이라는 걸 인지 시키는 일 뿐이며, 애석하게도 사회에 나와서도 그런 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그런 때는 무턱대고 참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분노할 땐 분노를 건강한 방식으로 표출해야 한다, 많은 게 나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