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라는 동물은 예로부터 인간과 독특한 유대 관계를 형성해 왔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신과 악마의 이미지가 공존했으며 이 때문에, 고양이들은 인간에게 추앙 또는 박해받았다. 질병을 옮기는 골칫거리 쥐를 잡아주는 고양이를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으로 숭배하거나 가축으로 들여 길렀다. 이집트인들은 고양이가 신의 화신이라고 생각하거나 고양이 자체를 신으로 생각하고 소중히 여겨 인간과 함께 미라로 만들어 장사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녀사냥의 역사에서 고양이가 대거 살해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마녀’라고 일컬어진 수많은 여성 또는 점술사들이 얼토당토않은 사유로 죽임당할 때 그들이 들여 키우던 반려 고양이 또한 함께 화형당했다고 한다.
고양이처럼 인간 역사와 얽히고설킨 동물이 또 있을까. 그래서인지 작가들은, 특히 환상 문학을 쓰는 사람들은 고양이를 참 좋아한다. 고양이가 나오는 소설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좋을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검은 고양이」는 고양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길함을 기묘한 살인과 연관하여 추리와 공포 소설의 대표로 불린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SF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일명 ‘고양이 3부작’이라고 불리는 장편소설 세 편(『고양이』, 『문명』, 『행성』)을 완결했다. 그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더 나아가 고양이가 자신에게 이식된 USB를 ‘제3의 눈’이라고 부르며 인간의 지식을 흡수하고 활용하는 미래를 가정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고양이 3부작 집필 후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을 출간하며 고양이에 대한 남다른 지식과 애정을 드러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주변을 배회하는 고양이가 많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을 돌보거나 학대하는 이들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고양이를 괴롭히거나 죽이고 심지어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을 이유 없이 혐오하기도 한다.
피스오브마인드 작가의 단편 〈길고양이〉는 위에서 언급한 고양이의 신비함과 인간과의 특별한 관계, 고양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랑과 혐오를 동시에 녹여낸 소설이다. ‘그’라는 삼인칭 주인공을 중심으로 두 여자가 있다. 이 여자들은 고양이를 한없는 사랑으로 돌보거나, 고양이가 당하는 학대를 무심히 방치한다. ‘그’는 두 여자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고양이는 ‘그’의 내외적 갈등을 감시하듯 지켜보며 ‘그’에게 묘한 신비감을 뿜어낸다. 나는 너를 지켜보고 있다. 네가 두 여자에게 품은 마음을 똑똑히 들여다보고 있다.
한편, ‘그’의 도시에서는 고양이가 죽어 나간다. 마치 그를 둘러싼 혼란처럼 이유도, 원인도 없이.
나는 네가 어젯밤 한 일을 알고 있다
〈길고양이〉는 삼인칭 시점을 취하는 주인공이 “고깃덩어리처럼 납작하게 짓이겨진” 고양이를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쓰레기 수거함 안쪽을 들여다보던 독자는 개인지 고양이인지 알 수 없는, “언젠가 심부름으로 샀던 고기 다섯 근”과 다를 바 없는 한 생명의 죽음을 발견한다. 누가 저런 악랄한 짓을 저질렀을까. 글의 제목으로 보아 생전에 고양이가 분명했을 그 살덩어리의 끔찍한 형태 묘사는 독자를 순식간에 분노하게 한다. 어떤 놈일까. 이 도시에서 고양이를 저렇게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뒤틀린 자일까.
선명할 정도로 잔인한 꿈에서 깬 ‘그’는 얼마 전 아내가 보여준 ‘고양이 사진’을 떠올린다. 독자들은 꿈속의 폭력에서 벗어났다고 안도할 틈도 없이 실제 한 고양이에게 벌어진 학대를 마주한다. “가랑비라도 맞은 듯 누렇고 거친 털, 붉은 살점이 보이는 눈 위의 흉터”, “군데군데 털이 빠져” 드러난 “분홍색 살갗”.“수염 주변은 짧은 흉터로 지저분”하다. 아무 일도 겪지 않은, 보통의 길고양이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는 그 고양이가 의도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걸 키우겠다고?” ‘그’의 캐릭터는 이 반응 하나로 요약된다. ‘그’는 동물 학대가 나쁘다는 걸 알지만, 학대당한 동물을 구조할 생각은 없는, 더 나아가 그런 동물이 집에 들어온다면 슬그머니 불쾌해지는 부류의 사람이다. ‘얘’도 아닌 ‘이것’이라고 고양이를 칭하는 걸 보니 타 존재에 대한 조심성과 예의가 부족하다. “가정에서 분양하는 하얗고 이쁜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면 안 되느냐는 생각에서는 평균보다 조금 덜 섬세한 생명 감수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의 캐릭터는 다소 불쾌하다. 그 불쾌감은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심화한다. 그가 동물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특유의 무례함을 계속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는 열패감으로 왜곡된 시선에 타인의 우울을 통과시킨다. 그 결과 아내의 우울증을 “자신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한다. 그는 은근한 방식으로 인간에게 무례하다.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있음에도 배드민턴 동호회의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거나 그 여자와 원룸에서 함께 술을 마시는 등의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손찌검하는 놈은 아니야. 만나지 마”라는 그럴듯한 말을 하면서 정작 본인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
이렇게 은밀한 불륜을 즐기는 그의 세상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것은 한 마리 길고양이다. 아내가 키우고 싶다고 했던 볼품없는 동물. 힘없이 자신의 우울을 쏟는 아내가 유일하게 소중히 여기는 생명. 그 고양이는 알고 보니 불륜 상대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고양이는 마치 그를 감시하는 것처럼 이 여자와 저 여자 사이를 오간다.
이 고양이는 이 소설 안에서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의 아내와 함께 있을 때 이 생명은 한없이 소중하다. 고양이가 ‘그’의 집에 있을 때, ‘그’의 아내에게는 길고양이를 예쁘게 가꾸고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집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고양이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학대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내는 급기야 그 고양이를 ‘하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길들이고 키우고자 한다. 아내는 이 고양이가 돌봄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고양이 살해를 끊임없이 염려하고 하담이 그 일에 말려들지는 않을까 불안해한다. 이때 ‘하담’은 아내에게 보호받는 존재다. 하담의 몸 여기저기에는 상처가 있고 아내는 그 상처를 치유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불륜 상대인 여자와 함께 있을 때, 이 고양이의 위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 젊은 여자는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가 아내와 조금 다르다. 그녀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방법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길고양이를 향한 관심이 ‘그’의 아내보다 깊어 보이지만, 남자친구가 고양이를 담배로 지졌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뱉는다. 그녀에게 이 고양이는 폭력의 대상이다. ‘그’에게는 어떨까. 그가 이 여자와 바람을 피울 때, 고양이는 감시의 주체다. ‘그’는 고양이가 자신의 불륜을 모두 알고 지켜본다는 기분을 느낀다. 하담은 그를 ‘감시’한다. 그러나 하담이 그의 아내에게 충성하거나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 남자와 불륜 사이인 여자 사이를 감시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하담은 ‘그’의 아내가 자신에게 쏟은 사랑을 버려두고 집에서 나간다.
고양이의 여러 얼굴은 ‘그’에게 다층의 긴장을 준다. 고양이가 그의 집에 있을 때, 독자는 서스펜스를 느낀다. 아내는 모르지만 ‘그’와 고양이, 독자만 알고 있는 정보가 있다. 난 네가 어젯밤, 다른 여자를 만나고 왔다는 걸 알고 있다. 고양이는 아내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맡기며 속삭인다.
‘그’의 불쾌감, 도시의 불안감
이 소설의 분위기는 불쾌감과 불안감이 위태롭게 범벅되어 있다. 주인공인 ‘그’에게서 불쾌감이 기인한다면 불안은 공간적 배경이 되는 도시에서 발생한다. 그 도시에서는 고양이가 계속 죽어간다. 원인도 모르는 사이 여러 마리가 살해되지만, 이 끔찍한 사건은 ‘그’의 아내의 입으로만 발화된다. 아내는 연쇄적으로 고양이들이 죽어 나간다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이는 그녀가 키우고자 하는 고양이 ‘하담’ 역시 이 도시에서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있잖아, 주택가에서 고양이가 또 죽었대. 이번엔 전봇대에 매달아 놨다나 봐. 더 두고 볼 수가 없더라구. 이러다 꼭 죽을 것만 같아서…”
고양이가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그’는 동물의 사체로 의심받는 폐기물을 여럿 발견한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봉지들은 그의 꿈과 연관되어 내용물이 동물의 사체처럼 보이지만, 실상 생활 쓰레기와 양념치킨 뼈를 버려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동물의 죽음이 불확실한 으스스함을 형성할 때 독자는 이야기에 몰입한다. 무언가 더 죽겠네. 이번엔 정말 뭔가 죽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에게는 자연스럽게 하담에게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싹튼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두려움에 무심하게라도 답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가 답을 은근히 강요하자 “쓰레기들”이라며 대꾸했을 뿐이다. 고양이가 죽은 것은 그의 관심 밖이다. 이런 무심함은 극도로 불안해하는 아내의 반응과 대비되며 하담에게 무슨 일이 닥쳤을 시 적어도 그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할 거라는 암시를 한다. (하지만 ‘그’는 하담의 죽음에 무관심한 것보다 더욱 끔찍한 짓을 저지른다)
이렇게 불쾌감과 불안감이 위태로운 파도를 일으키며 섞이다가 한순간 고요해진다. 이 고요는 남자가 고양이를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에서 찾아온다. 그는 불륜 상대인 여성이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통제력을 잃는다. 아내와 새로운 여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다는 긴장감이 툭, 끊어지는 순간이다. 그는 자신이 꽤 그럴듯한 통제력을 발휘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가 그저 한 여자가 만나는 여러 애인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자 억누르고 있던 한 줌 자제력은 힘을 잃는다.
크게 타오르는 불이 맞불을 만나면 오히려 사그라드는 것처럼, 고양이를 살해한 그에게서 잔혹함 외의 이미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전에 팽팽하게 이어오던 긴장감은 한순간의 폭력성으로 화한다. 그 순간의 이후에는 불안도, 불쾌도 없다. 그저 남자의 악행만이 독자 앞에 충격적인 모습으로 드러날 뿐이다. ‘그’가 고양이를 집어 던지고 발로 밟는 등의 행위는 앞서 그가 가장 먼저 꿈으로 보았던 고양이의 죽음이 결국 ‘그’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을 확실시한다. 결국 이 소설 안에서 독자가 발견하는 진실은 가장 뒤틀린 사람이 ‘그’라는 것이다.
“손찌검하는 놈은 아니야. 만나지 마”라는 그의 말은 소설의 결말에서 효력을 잃는다. 이는 작가의 분명한 의도다. 물론 짐작했겠지만, 그의 그럴듯했던 모든 행동은 폭력과 분노를 숨기기 위한 가면이었다. 그는 실제로 통제 불가능한 인간이며 이중적이고 잔인하다. 그것을 이야기가 끝나기 직전까지 감춰 오던 그는 결말에 가서야 본성을 드러낸다. 처음에 그가 꾸었던 꿈은 무의식이 내재한 진짜 자신이었다.
〈길고양이〉는 처음과 끝이 연관되며 끝난다. 하지만 독자의 마음 한구석에는 의도된 찝찝함이 남는다. 고양이를 죽인 범인도 밝혀졌으니 이제 우리는 이 이야기를 덮으면 되는 것일까. 그러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우선 소설 속 세계에서 고양이의 죽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가 고양이 한 마리를 살해했지만, 도시의 모든 고양이가 그에게 죽임당했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말은 일명 ‘고양이 살해범’이 아직 확실하게는 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의 결말 이후에도 죽어가는 고양이가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한 공포가 도시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고양이의 망령은 도시에서 떠나지 못한다.
‘그’는 어떤 방식으로도 속죄하지 않았다.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지만, 그 대상이 고양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간다. 우리의 주변에는 고양이를 죽인 인간이 없을까. 정말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의 작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은근히 경고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담’이라는 아기의 탄생은 의미심장하다. 이 공포와 폭력의 지속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직 ‘그’가 한 일을 모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고양이의 이름을 아이에게 붙인다. 그러나 ‘그’에게 ‘하담’이라는 이름은 공포 그 자체인 동시에 스스로 살해한 생명이다. 아기 하담의 탄생은 이야기 내내 고양이에게 향했던 폭력을 인간에게 전위한다. 인간에게 한없이 잔인한 사람은 먼저 그 폭력성을 동물에게 보인다지 않는가. 결국 ‘그’는 인간에게도 잔혹할 것이다. ‘그’의 생존으로 인해 인간의 악과 폭력은 연장된다.
그는 세상에 흔해 빠진 것이 길고양이와 불륜이라고 자위한다. 스스로 최악의 인간만은 면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는 세상에 만연한 다른 하나를 간과했다. 자신이 온 시간을 바쳐 치밀하게 증명한 단 한 가지. 인간의 폭력성이다. 세상에 만연한 건, 길고양이와 불륜, 생명을 향한 혐오와 폭력이다. 〈길고양이〉라는 이 짧은 소설은 인간과 동물, 동물과 인간에게는 폭력의 경계가 없다고 말한다. 폭력에는 단지, 위치와 대상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오늘도 쓰레기장에서는 원인 모를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니, 어쩌면 원인이 분명한 울음소리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