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작가님의 신작을 격하게 환영합니다. 저도 긴 시간을 독일에서, 베를린에서 보냈던 사람이라 그런지 이준 작가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참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이민자로 살아봤기 때문에, 더 잘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반대로 그만큼 상상력이 제한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전작들에서는 악역의 역할이 도드라지지 않았던(“지아”도 일종의 안티히어로에 더 가깝지요) 반면에, 이번 소설에는 분명한 악역, 플로리안이 등장합니다.(이 소설 속 이야기도 전작들과 같은 유니버스에서 벌어지는 일일까요?) 그는 동독시절 큰 공장 책임자의 아들로 통독 이후 일자리와 정체성, 자부심을 잃어버린 동독 출신 중년 남성의 어떤 면을 잘 보여주는 듯 하네요. 특히 자신이 상실한 어린시절의 어떤 부분의 책임을 오늘날 독일 사회에 들어와 살고 있는 여러 배경의 이민자들을 향해 돌리고 있는 점은 오늘의 독일사회가 처한 커다란 문제를 잘 보여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DDR가 좋았어.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세상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 적어도 그 땐 집이 없어서 떠도는 이가 없었다고. 지금 이 더러운 베를린을 봐. 개나 소나 들어와서 독일을 더럽히고 있어. 모든 게 잘못됐다고.
현실의 이민자들을 증오하고, 과거로 돌아갈 열쇠를 찾아 시간여행자 살인을 반복하는 플로리안, 누룩을 먹게 된 후 그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로 인해 발생하는 타임패러독스(?)는 어떤 것일까요? 조금 궁금함이 남습니다.
이준 작가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 조금 식상할 수 있겠지만 – “사랑이 이긴다”인 것 같습니다. 인생을 함께 하게 된 시간여행자 묘지기와 이민자 도장공, 이 두 남녀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까요. 인종혐오의 수위가 나날이 올라가는 듯 보이는 요즘, 베를린에 살아가는 모든 이민자들이 이들과 더불어 조금 더 행복하길 바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