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먹어보면 미묘하게 다른 수많은 음식과 재료가 있다. 맛의 한 끗 차이를 느끼고 싶은 미식가에게도, 음식에 진심인 요리 초보자들에게도, 제대로 된 식사 한 끼를 위해서라면 먼 곳으로 떠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와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 언젠가 본 SF 영화에서 캡슐 하나로 음식을 대체하는 미래를 보고 너무도 끔찍하다고 생각했던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맛도 향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사망 선고와도 같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근미래의 풍경은 지옥과도 닮아 있다.
주인공 다미는 어릴 적 병으로 인해 몸을 잃고 뇌만 남아 의체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인공 안구로 눈을 뜨고, 정해진 시각에 의체가 작동되어 일어나고, 뇌는 따로 연구소에서 관리 중이다. 몸이 의체라는 사실을 숨기면 평범한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으니, 보여지는 외모가 로봇처럼 생기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음식을 먹지만 기능은 거의 없고 모양만 갖춘 혀와 이를 움직여 그저 먹는 시늉을 할 뿐, 맛도 향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먹는 행위가 사회생활과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에 필요하기 때문에, 식욕이 결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무언가를 먹긴 한다. 물론 아무 의미 없는 헛짓이지만 말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녀가 친구인 은지를 따라 글로톤인에게 미각을 대여하기로 하면서 펼쳐진다. 머리에 감각전송 칩을 심고, 글로톤인이 먹고 싶은 것을 욕구동기화로 알려주면, 그들이 내는 돈으로 고급 레스토랑을 비롯해서 온갖 좋은 음식점에 가서 다양한 음식들을 그저 먹기만 하면 된다. 글로톤인들은 규소형 생명체라 지구로 와서 실제 음식을 먹지 못하는 대신 감각만이라도 느끼고자 해서 이런 직업이 생겼다. 밥 한 끼 먹을 때마다 엄청난 보수를 받을 수 있어, 한 달 내내 식당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며 받는 돈을 일주일 만에 버는 은지를 보며, 어려워진 집안 형편을 위해 의체를 업그레이드하고 미각대여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외계인들이 감각 전송 기술을 개발해 지구인들의 미각을 대여한다는 설정도 기발했고, 주인공이 미각대여자가 되면서 음식을 주문해서 먹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맛에 대한 표현과 식감에 대한 비유, 음식에 대한 충만감에 휩싸인 채로 거리로 나왔을 때 보이는 풍경을 컬러로 표현하는 것도 신선했다. 그렇게 식욕에 빗장이 풀리고 나자 생겨버린 그 가공할 욕망에 고민과 한 끼에 십 여 만원이 넘는 음식을 먹는 만큼 제대로 소화도 시키지 못한 그것들이 가득 쌓인 밥통을 비우는 것에 대한 허무와 죄책감도 이어진다. 세상엔 먹을 것이 끝도 없이 널려 있는데, 끊임없는 허기와 식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 역시 쉽게 끊어낼 수 없다. 문제는 남은 의체 할부금 완납을 하기 위해서는 5년 동안 하루에 무려 여덟 끼를 먹어야 한다는 것. 하루에 8시간을 자고 16시간을 깨어 있는다고 보면 2시간마다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뜻인데, 과연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다미에게 특별 미식 탐험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온다. 자신들과 계약하면 지금보다 세 배의 돈을 벌 수 있다고. 그로톤 귀족 중에서도 최상위 레벨인 왕족들이 더욱 자극적인 미각을 찾고 있는데, 그들이 다양한 공감각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음식 제공하는 그 일을 그녀는 하게 될까. 그렇게 1부가 끝이 나고, 이야기는 2부로 이어진다. 제목이 <미식가들>이 아니라 <미각대여자들>이었다면, 더 SF스러운 느낌이 들었을 것 같은데, 오히려 <미식가들>이었기 때문에 작품의 내용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아 읽어 보게 되었다. 외계인들을 위한 지구인들의 특별 미식 탐험이라는 설정이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유튜브와 먹방이 일상이 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공감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공감각’이라는 능력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2부에서는 외계인들이 가지고 있는 미각을 해석하는 그들만의 공감각에 대한 부분이 비중 있게 다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2부가 이미 나와 있으니 바로 확인해보면 되겠지만, 조금 아껴서 읽어볼 생각이다. 재미는 아껴두면 두 배가 되곤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