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된다!
게으름을 부릴 때 흔히 쓰고 듣던 말이다. 그리고 같은 제목의 전래동화도 있지 않았던가? 유명한 게으름뱅이가 소가 되어 갖은 고생을 하며 천신만고 끝에 사람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 사실 소는 게으르지 않다. 기계를 사용하는 지금에서야 소를 부려 농사를 짓거나 수레를 끌거나 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지만, 옛날에는 소가 제공하는 노동력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소가 없으면 일을 못한다는 말도 있었으니까. 소가 게으르다는 말을 소가 들으면 이만저만 억울한 게 아니라며 하소연을 할 일이다. 게으름뱅이가 소가 된 이유도 소처럼 일하면서 게으름을 뜯어고치라는 게 아니었을까?
이 작품도 기본적인 플롯은 전래동화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우석은 소설가 지망생이다.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로 용돈벌이를 하며 설렁설렁 시간을 보내던 우석은 엄마의 닦달에 정부에서 진행하는 청년 구직자 지원 사업에 참여한다. 무직 기간이 3년 이상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회에 ‘기여’하게 해주겠다는 수상쩍은 문구에 머뭇거렸던 것도 잠시. 신청서에 서명한 우석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사업 참여자가 된 우석은 진행 기간 동안 속된 말로 ‘볼 꼴 못볼 꼴’ 다 보았다. 처음엔 어떻게든 운명을 바꿔보려고 발버둥쳤으나 그 노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계산상으로 일주일 정도는 여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석은 애쓰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당장 한 끼 배불리 먹고 노는 걸 선택한다. 세상 모든 일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으니 사실상 여유 시간은 여유 시간이라고 볼 수도 없는데.
왜 모르는 걸까요? 코뚜레가 채워지고 나서야, 우리는 자유로워졌다는 걸. 그건 불알 두 짝을 내줘도 괜찮을 정도의 특권이라는 걸.
우석의 이 독백이야말로 그를 ‘프라임’이 되게 만든 가치관을 가장 뚜렷하게 내보여주는 게 아닐까.
전래동화에서 게으름뱅이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근면성실한 사람이 되었다면, 여기서는 우석이 자신의 꿈을 이룬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그 꿈 말이다. 진정한 ‘Dream come true’인지 아닌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3년 이상 무직이었고 체격이 좋다는 이유로 우석이 겪은 일을 생각해보면 입맛이 씁쓸하다. 가치 있는 사람들만 살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인지, 그 가치는 과연 누가 정하는 것인지, 사회에서 정해진 가치대로 살아가야만 하는지. 조금 더 나아간다면 우석이 그런 환경에 처한 것은 본인의 노력이 부족했던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지, 구조적으로 착취당하는 소외계층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제도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등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짧은 단편 안에 다양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 작가님의 필력에 감탄만 할 뿐.
소가 된 게으름뱅이.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제목이다. 과거와 현대에서 소가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 그리고 게으름에 관한 정의까지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면서 읽어보면 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우석이 사업에 지원하면서 겪은 일이 이 소설의 핵심이므로 구체적으로 내용을 서술하지는 않았다. 지원 사업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