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푸르른 고통의 신명 안에서 공모(감상) 공모채택

대상작품: 푸른 신명(神命) (작가: 장아미,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5월 25일, 조회 63

최근 몇 년 간의 팬데믹은 우리에게 질병과 바이러스의 유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우쳐 주었다. 잠깐 유행 후 사라질 줄 알았던 하나의 바이러스는 수십 수백 갈래로 분화해 전세계에 퍼졌고 지금까지도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범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친 신종 돌림병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이전에 겪지 못한 새로운 질병이 나타나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으며 치명률이 높아지는 한편, 유행하는 기간 역시 길어지고 있다.

질병의 유행과 같은 하나의 사회적 사건은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을 남긴다. 그것은 강렬할수록, 오랜 기간 이어질수록 더 많은 이에게 길게 기억된다. 기억은 기록이 되기에 사건이 문학으로 남는 것은 필연적이다. 팬데믹의 장기화에 따라 바이러스, 또는 질병의 유행을 다룬 소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누군가는 질병으로 고통을 받지만 그 아픔 또한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코로나를 기록한다. 무한히 많은 장르에서 쏟아지는 팬데믹 소설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 또한 다양하다. 그렇기에 크고 작은 고통이 진행형인 지금, 가공의 세계를 설정해 질병을 다루는 데에는 이전과 다른 감수성이 필요하다. 이런 문학의 창작을 긍정적으로 보든, 비판적으로 보든 한 가지 확실한 건 질병에 관한 소설이 그치지 않고 향후 수 년간 활발히 창작될 것이라는 점이다.

전술한 상황 속에 장아미 작가의 단편이 〈푸른 신명(神命)〉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우리는 이 소설의 등장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저 다른 팬데믹 서사와 같은 위치에 이 단편을 두고 ‘예상 가능하다’는 시선으로 읽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사실 그런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팬데믹 소설뿐 아니라 어떤 사건이나 사회적 유행을 담은 소설이 창작되어 나올 때 독자는 매우 주의해야 한다. 특정 테마를 다룬 스토리텔링의 범람 속에서 하나의 경향으로 작품을 일반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다 알고 있다는 듯’ 팬데믹 소설을 대하면 안 된다. 그 안에서도 작가의 의도에 따라 세밀하게 갈라지는 이야기의 유형이 있다.

장아미 작가는 세분화된 팬데믹 소설에서 특수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주제를 발빠르게 파악했다.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 바로 그것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비롯한 소위 자연주의는 인간의 잘못으로 인한 세계의 파국을 늘 경고해 왔다. 바이러스의 유행을 기해 일회용품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고 환경 오염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의 속에서 환경 단체와 운동가들이 분투하고 있다. 이는 언제나 경고되어 왔던 바로 그 상황이다. 지금 우리는 종말의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이런 주제 역시 과거로부터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는가. 작가는 여기에서 새로움을 꾀한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을 과거로 설정한 것이다. 바로 지금, 현실을 다룬 이야기는 독자들이 받아들이기에 자극적이고 직관적일 수 있으나 과거에 현재를 빗대는 작업은 이 자극성을 조금 중화한다.

그리하여 비유적이고 상징적이며 암시적인 하나의 소설이 탄생했다. 〈푸른 신명〉은 어느 팬데믹 소설과도 동일하지 않다. 여기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작가의 세심한 설정이다. 장아미 작가는 질병을 단순히 인간의 이기심으로 치환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질병이 ‘이기심’의 결과물이 될 때 수많은 감염자의 고통은 무시되기 쉽다. 작가는 팬데믹 소설에서 가장 자주 발생하는 의미의 오류를 능숙하게 피해간다. 그러니 우리는 조금 특수한 시선으로, 그러나 약간은 편안한 마음으로 이 단편에 귀기울일 준비만 하면 된다.

인간의 이기심과 질병마저 푸르게 감싸는 하나의 신명이 정체불명의 산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

 

 

아픔으로부터의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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