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스모르찬도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스모르찬도 (작가: 사선,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2년 5월, 조회 46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미지의 존재인 ‘고도’를 기다리는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는 독자에게 흥미로운 의문을 던진다. 언뜻 듣기에 그 대화는 말이 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로 시작되는 이 희곡에서 분명하게 제시되는 정보값은 아무것도 없다. 주인공의 이름과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라는 존재 이외에는 장소와 시간, 주변 상황에 관한 묘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둘은 횡설수설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둘은 분명히 자신들이 고도를 기다리고 있음을 인지한다. “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거지”, “기다리는 거지”, “기다리는 거야 버릇이 돼 있으니까”, “기다리는 동안 뭘 하느냐고?” 등으로 ‘기다림’의 행위가 희곡 전반에 암시된다. 소설의 중반쯤 고도에 관한 인물(소년)이 겨우 등장하지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다

블라디미르 : 넌 고도 씨 밑에서 일하고 있냐?

소년 : 네.

블라디미르 : 그래, 무슨 일을 하지?

소년 : 염소를 지켜요.

블라디미르 : 고도 씨는 너한테 잘해주냐?

소년 : 네.

소년의 말에서 유일하게 ‘고도’를 언급하는 부분은 “고도 씨가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하랬어요”라는 대목이다. 그 외에는 고도가 소년을 잘 대해주는지, 소년의 가족관계는 어떤지에 관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정된 정보를 주고받음에도 소년과 블라디미르, 에스트라공은 서로를 아주 잘 아는 듯한 눈치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가장 독특해 보이는 특징은 인물의 대화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 같으면서도 (심지어 그 안에 많은 정보를 담을 것 같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내용은 모두 피해가고 있다는 데에 있다. 분명히 고도가 올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지만 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고도는 오지 않는다. 이 희곡이 끝날 때까지 고도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때문에 혹자는 고도가 ‘인간세’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그를 불멸자나 신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파격적인 결말이 공연 당시에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고 한다. 무엇도 완성되지 않는 마무리가 당대의 관객에게 깔끔하지 못하게 여겨졌으리라. 지금도 이러한 맺음을 시원찮게 여기는 독자들이 분명히 있다. “다음 날, 디디와 고고는 고도를 만났고 셋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을 바라는 이들 말이다.

사선 작가의 단편 〈스모르찬도〉에 등장하는 류보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이 작품의 결말을 몹시 언짢아한다. 『고도를 기다리며』가 희곡인지 소설인지, 그 안에 나오는 사람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인지 고고와 디디인지 그에게는 알 바 아니다. 하지만 류보는 베케트의 인물들과 조금 닮아 있다. 작가가 ‘부조리극’을 연출하고자 시도했다면 그에도 제법 어울리는 사람이다. “하루에 적어도 세 번 거짓말하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거나 “거짓말은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늘상 주장하는 그는 사사건건 가볍게 부딪히는 모리와 함께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의미 지연 현상”을 탐색하기 위해 숲을 찾았다. 베케트의 희곡에서 고도가 등장하지 않은 것처럼, 그들의 세상에도 의미 지연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잖아. 고도의 도착이 영원히 지연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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