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점에서 시작된 두 직선은 아무리 작은 각도로 틀어졌다고 해도, 한없이 늘어뜨리면 서로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집니다. 그것은 서로 평행인 직선끼리는 만날 수 없는 것처럼 자명한 명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아무리 큰 각도로 틀어진 직선이라도, 한없이 멀리서 보면 결국 하나의 점으로 보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 역시 서로 평행하게 나아가는 빛이라도 강력한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 서로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자명한 명제입니다.
제가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두 빛을 관측했습니다. 이들의 이름을 민주와 서린이라고 명명하죠. 이 둘은 서로 다른 각도와 속도를 가지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한 번 교차하기는 했으나 결국 서로의 특성 때문에 영영 멀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민주는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그것이 당연한 사람입니다.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로 거시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고, 그럴만한 힘도 있습니다. 반면 서린은 그렇지 않죠. 그 영원을 동경할 뿐 언젠가는 육체의 한계를 맞이할 것이고, 한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 안에서 일어난 것들을 눈에 새깁니다. 이러한 부분은 그들이 블랙홀 발전기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드러나서 민주를 향한 서린의 저항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드러납니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 비틀어보면 민주 역시 영원을 동경합니다. 정확히는 영원히 이름이 남는 것에 동경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는 서린을 자신에게 새기고, 우주에 새김으로서 자신이 사랑한 것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 때문에, 마지막에 민주는 서린의 고백을 섣불리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랑과 기쁨으로 새기고 싶었던 서린의 이름에 민주가 직접 먹칠을 한 채 후회와 고통으로 새기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이렇게 보면 두 사람은 ‘영원’이라는 점에서 교차를 이뤘다는 것을, 아니면 그 점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각도와 속도로 뻗어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소설 전체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풍습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도, ‘결혼’도, 심지어는 ‘한글’도 지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미국 영화에서는 외계인도 영어를 쓴다.”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아니라, 이 부분을 직접 명시한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마치 우리가 아무리 우주로 뻗어나가도, 언젠가 지구를 먼 과거의 유산으로 취급하는 때가 오더라도 우리는 결국 지구라는 하나의 점에서 출발한 직선이라는 걸 명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이 은하에서 그들은 ‘외계인’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외계인처럼 느껴지는 생명체들도, 결국 지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직선일 뿐이라는 것도 비슷하게 느껴졌고요. 물론 민주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이해가 같은 눈높이에서 벌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이야기합니다. 서로 다른 속도와 각도로 나아가던 민주와 서린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우주입니다. 충분한 질량을 가진 행성의 중력만으로도 우주탐사선의 이동 경로를 바꿀 수 있는 곳이죠. 하물며 블랙홀 발전기라니.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 안에서는 찰나도 영원처럼 길어진다고 하죠. 직선으로 뻗어나가던 두 빛이 휘어져 겹치기 시작합니다. 잠깐의 교차가 원을 그리며 끝내 하나의 새로운 점이 됩니다. 그래서 블랙홀 발전기를 결혼반지처럼 표현한 것이, 그들이 끝내 동경했던 영원을 이뤄냈다는 걸 드러내기에 아주 적절한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브릿G에서 처음 써보는 리뷰기도 하고, 사실 SF나 백합도 즐겨 읽어본 적은 없는 장르라서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는 자신감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읽어나갈수록 그런 걱정을 언제 했냐는 듯 재밌게 읽어나가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작품 써주신 샤유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