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종교를 가진 것도 아니고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여느 휴일과 다름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 것 같지만, 어디선가 캐럴이 들려오거나 누군가 트리를 장식하거나 선물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뭉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한때는 나도 저들처럼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여기고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차갑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나 싶기도 하고…
<누가 산타를 죽였을까>의 ‘나’는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이다. 소설가인 ‘나’는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후배와 일주일에 한 번씩 카페에서 만나 글을 쓴다. 크리스마스에는 카페 문을 안 열어서 글 쓸 곳이 마땅치 않다는 후배의 말에 ‘나’는 10년 넘게 잊고 지냈던 가족 별장을 떠올린다.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족들과 별장에 가서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양말을 걸어놓고 산타를 기다렸는데, 부모님이 크게 싸우고 사이가 멀어진 후로는 발길을 끊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별장에 도착한 ‘나’와 후배는 벽난로에 불을 피우다 뭔가가 굴뚝을 막고 있는 걸 알게 된다. 부지깽이로 굴뚝 안을 열심히 쑤신 끝에 나온 것은 숯이나 그을음이 아니라 한 구의 시체. 그것도 산타 옷을 입고 아이에게 줄 선물을 든 남자의 시체였다. 이때부터 시체의 정체를 두고 ‘나’와 후배의 논쟁이 시작된다. 산타 옷을 입고 아이에게 줄 선물까지 들었으니 산타가 확실하다는 ‘나’와 시체의 정체가 산타가 아니라는 증거를 대는 후배.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
‘나’는 왜 후배를 별장에 데려왔을까. 시체의 존재가 드러나기 전에는 그저 ‘나’가 크리스마스라서 갈 곳이 없는 후배를 위해 잊고 있던 가족 별장을 생각해 내서 데려온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나’와 후배가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님이 밝혀진 후에는 어쩌면 ‘나’의 무의식이 후배를 별장으로 데려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불우한 가족사와 남몰래 간직하고 있던 트라우마를 알고도 나를 만나줄 사람이라면 나를 사랑해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이들을 여기로 데려온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이 소설은 비밀을 고백하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시체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산타의 존재 여부에 관한 논쟁도 재미있다. ‘나’는 의외로 산타의 존재를 믿는 입장을 취하는데, 이는 과거에 생긴 트라우마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퇴행 현상일까. 산타는 없고, 있어도 보통 아빠라고 말하는 후배의 침착한 모습도 인상적이다. 산타의 정체가 아빠는 아니었으나 아빠의 자리를 위협한 누군가라는 점도 흥미롭다. 결국 산타는 아빠가 아니라 아빠를 대신할 뻔한 사람이었으니 산타는 아빠였던 게 맞는 건가 아닌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