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사진의 녹색이 보이면 일단 믿고 보는 녹차빙수님의 작품 ‘붉고 가는 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믿고 본다는 건 제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으니 지금 바로 작가님의 작품들을 검색해보시는 것도 좋겠군요. 장르 문학을 사랑하시는 브릿G의 독자분들이라면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최근 작가님의 작품 색깔을 잘 보여주는 ‘녹차빙수 작가님 입덕용 작품’으로 추천할 만 한 재미있는 호러물입니다.
작가님의 장점이라면 역시나 술술 읽히는 편안한 문장력과 그 문장력을 여러 가지 스타일의 호러 장르에 잘 녹여내시는 능수능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작만 봐도 러브크래프트와 만나고 오신 듯한 코스믹 호러 스타일의 작품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일본 고딕 호러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들이 등장하는데, 어떤 작품이던 어렵지 않게 접근해서 충분히 즐거운 글 읽기가 될 수 있도록 표현은 명료하고 복잡다단한 구성이나 독자의 머리채를 억지로 쥐고 흔드는 반전의 반전의 반전은 배제되어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민 없는 선택을 지속해 온 삶에 대한 후회가 조끔씩 생기기 시작한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주인공에겐 비슷한 고민을 가진 친구가 하나 있는데, 친구가 주인공과 다른 점은 주인공이 비틀비틀 하면서도 남들을 뒤쫓아 걷고 있는 반면 친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 그래서 한없이 부정적이고 우울해진 친구는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모습을 자주 보이고 그런 모습을 자꾸 봐야 하는 주인공도 점점 지쳐가게 됩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집에서 발견된 정체 모를 선들(정확히는 산에서 따라온 선들입니다)이 주인공의 관심을 끌게 되는데, 그것을 관찰하면 할 수록 꼬물거리는 선들이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앙증맞은 인류의 친구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곧 파국을 불러옵니다.
작품의 내용을 보면 그 선들이 세상의 무질서도를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표현이 있는데, 전 오히려 선들의 묘한 분해 작용이 오히려 인간 세상의 무질서도를 줄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지하철 역 환승 센터나 번화한 도심지 사거리의 각이 잘 잡힌 구조물들과 그것들을 이루는 선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보통 ‘복잡하다’입니다. 복잡함과 질서는 완전히 반대되는 뜻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지요. 만약 그 선들이 시스템의 운영 프로그램에 생긴 버그나 블랙홀처럼 언젠가 우리 우주를 모두 분해한다면, 그것이 바로 무에서 시작되어 무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 곧 질서가 아닐까 싶었거든요.
문제는 그것이 하필 사회 적응에 실패한 우울한 이들에게 먼저 마수를(?) 뻗치다 보니 지구 정복의 야욕을 가지고 우주에서 온 정체 모를 색채 같은 느낌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선들에겐 감정이 없죠. 그것들이 고통 없는 안식을 준 것도 아니고, 주인공의 친구가 그들에게 가졌던 약간의 위안도 결국 혼자만 가졌던 답 없는 메아리 같은 것이었기에 이 이야기는 결국 남들과 함께 걸어보려는데 자꾸만 발이 걸려 넘어지는 외톨이들의 끔찍한 고독을 호러의 형식을 빌려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릿G의 독자 여러분들도 녹차빙수님이 표현하신 그 차가운 고독을 한 번 느껴보시죠.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재미에 대해서는 더 부연 설명을 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최근작들과 비교하면서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