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신비롭습니다. 끝없이 우리를 붙잡아 두기 위해 관심 가질만한 것들을 끝없이 노출 시키고, 우리는 그것에 현혹되죠. 이 소설의 공포는 이 과정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무섭습니다. 단지 기계적인 알고리즘이 폭주하여, 심연(딥웹)에 까지 이르는 과정은 어딘지 모르게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타당성이 있어보입니다.
먼저 난시를 가지고 있고, 공포물을 싫어하지만 좋아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촘촘하게 현실을 조형 합니다. 이 조형은 무척이나 친밀하고 사실감 있게 조형 되는데, 우리가 그만큼 공감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요소들로 꼼꼼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공포의 핵심적인 부분인, 자신이 몇 번 누른 유튜브 영상이 자신의 계정을 침식하는 과정까지도 전략적으로 구성된 공감하기 쉬운 요소들입니다. 이 작품은 독자가 꼼꼼하게 조형된 이 현실에 빠져들었을 때 붕괴 시킴으로써 위협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방식을 취합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 하는 가정이 공포의 핵심적인 맥락이지요.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무서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이미지가 아닌 청각적인 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호러의 이미지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단지 청각적인 영역으로 ‘들려줄’ 뿐입니다. 아마도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검정색 ASMR영상이란, 스너프 필름의 일종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 것이 정말로 스너프 필름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는 간접성이 내포하는, 이 모호함 때문에 우리는 진짜 스너프 필름이 갖는 비현실적인 거리감을 지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스너프 필름이 아닌 단지 알 수 없는 무서운 영상으로 남아서 우리의 현실을 공격합니다.
러브크래프트에게 환상적인 것의 근거는 작품이 아니라 독자의 독특한 경험에 있으며, 그 경험은 공포이어야 한다라고 합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분위기이며, 환상적인 것의 진정성의 결정적인 근거는 플롯의 구조가 아니라 어떤 특징적인 느낌의 창조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이론은 츠베탕 토도로프에게 대차게 까였습니다. “진지한 비평가들의 펜 끝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라면서 말이지요.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는 이 문구를 소개하고 싶어졌는데, 이 작품이 지극히 체험적인 관점을 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조형된 이 세계는 알 수 없는 무서운 영상이 갖는 모호함 때문에 이 소설은 공포 문학이 갖는 환상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알 수 없는 무서운 영상은 현실의 논리 구조를 벗어난, 초월적인 위협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결과물을 빚어내는 것이죠. 상식적으로 유튜브 실명 닉네임 가지고 우리의 주소를 추적하는 말도 안되는 짓이 가능할까요?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게 가능할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마주친 알 수 없는 검정색 영상은, 법리와 사회의 규정으로 구속되는, 있어서는 안되는 스너프 필름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실을 공격하는 환상적이면서 실질적인 위협입니다.
이 비현실적이면서도 공포스러운 체험을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우리의 일상을 침범하여, 균열이 발생하는 순간을 소설은 타당성 있게 보여줍니다. 이 있을법한 타당성이야말로 공포의 원인이자,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원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