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에 남는 사랑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나는 먹는 것 (작가: 호두빙수, 작품정보)
리뷰어: 글 쓰는 빗물, 21년 5월, 조회 67

1

301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요리사다. 아침마다 그녀의 주방은 슈퍼마켓에서 배달된 과일과 채소 또는 육류와 생선으로 가득 찬다. 그녀는 그것들을 굽거나 삶는다. 그녀는 외롭고, 포만한 위장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잠시 잠시 잊게 해준다.

(중략)

2

302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단식가다. 그녀는 방금 301호가 건네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서 버리거나 냉장고 속에서 딱딱하게 굳도록 버려둔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외롭고, 숨이 끊어질 듯한 허기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약간 상쇄시켜주는 것 같다.

(중략)

3

어느 날, 세상 요리를 모두 맛본 301호의 외로움은 인육에까지 미친다. 그래서 바싹 마른 302호를 잡아 수플레를 해먹는다. 물론 외로움에 지친 302호는 쾌히 301호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외로움이 모두 끝난 것일까? 아직도 301호는 외롭다. 그러므로 301호의 피와 살이 된 302호도 여전히 외롭다.

 

<요리사와 단식가>, 장정일

 

배고픔을 생각하면, 외로움이 떠오릅니다. 사랑과 양육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어린이들에게는 실제로 제대로 된 식사를 공급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지요. 그 배고픔이 너무 심해지면 때로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거나, 배가 아파지기도 합니다. 이런 기억은 어쩌면 누구에게나 뱃속 깊이 남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음식을 생각할 때는 사랑한 기억이 줄줄이 사탕처럼 따라 나옵니다. 배고픔이 무엇인지, 외로움이 무엇인지 끝까지 모르는 채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고 누군가를 찾으며 살다 보면 또 배가 고프고 외로워집니다. 그럴 때 어떤 문학은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장정일의 시 <요리사와 단식가>, 그리고 호두빙수 작가의 <나는 먹는 것>이 그렇습니다.

 

독특함을 가진 존재가 회사라는 조직에서 살아남기는 참 힘들지요. 누구나 조금씩은 그러하지만, 유독 불거진 특성을 가진 개인은 존재합니다. <나는 먹는 것>은 경쾌한 문체와 서사에 신체 강탈자라는 장르적 요소를 살짝 더해, 외롭고 고유한 이들의 연대와 교류를 다정하게 그려냅니다. 사회가 정한 정상성에서 뜻하지 않게 멀어질 때 사람은 본능적인 불안을 느낍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곧 사회로부터 소외될 가능성을 높이고, 아주 오래전 수렵 생활을 할 때 혼자인 사람은 배를 굶주리던 기억이 우리에게 있으니까요. 그래서 괴이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이용해 관계와 ‘먹는 행위’의 아이러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에는 외로움이 옅게 묻어있습니다.

 

주인공의 회사 동료인 ‘E’는 자신의 텀블러에 담긴 무언가 외에는 아무것도 입에 대는 법이 없습니다. 회식도 하지 않고 간식을 나눠먹는 일도 없으니, 특유의 아우라 덕분에 누구도 건드리지는 않지만 E는 기본적으로 혼자인 셈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알 수 없는 매력이 느껴지는 E를 자기도 모르게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음식을 먹지 않는 E의 비밀이 궁금해집니다. 다른 동료들도 가벼운 가십거리 삼아 E가 절식을 하는 이유를 추측하기는 하지만, 주인공의 궁금증은 그러한 호기심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요. 그는 E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알고자 합니다. 그 결과 어느 날 E가 부장의 인감도장을 몰래 숨겨와 ‘먹어버리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다음날 E는 회사에 나오지 않고, 대신 코끼리가 부장의 차를 파손하는 사건이 발생해요. E의 정체를 향한 주인공의 관심은 커져만 가고요. 상대를 알고자 하는 마음은 관계의 시작과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상대를 대상화시키는 가벼운 관심은 존재와 존재를 유의미하고 건강하게 연결하지 못하지요. 아픔과 기쁨을 포함한 한 인격체로서의 상대에 대해 정확히 알고자 할 때, 비로소 관계의 문이 열립니다. E를 향한 호감을 느낀 주인공이 그에게 던지는 깊은 질문들은 E가 처음에는 뜻하지 않게, 그리고 갈수록 의도적으로 자신의 비밀을 주인공과 공유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주인공과 E는 서로의 유일한, 즉 특별한 존재가 되어갑니다.

 

E와 가까워지면서 주인공이 알게 된 비밀은 이렇습니다. E는 원래 뱀이었고, 어느 굶주린 시기 무속인을 잡아먹다가 ‘음식을 먹기만 하면 그것으로 변하는’ 저주에 걸립니다. 이 저주는 조금 변주가 많아서, 상아로 만든 도장을 먹으면 코끼리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무언가를 먹어도 그 음식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여러 재료가 섞인 것을 먹으면 다음 날 무엇이 될지는 본인도 모르고요. 소설은 에피소드 간 비중에 큰 차이를 두지 않으며 잔잔히 이어집니다. E의 비밀이 밝혀진 후, 코끼리가 되었던 E에 의해 차가 망가진 윤 부장은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되어 돈을 벌었다는 이유로 회식을 엽니다. 사원들 모두가 불편해하는 이 자리에서 윤 부장은 탐욕스러운 얼굴로 뱀술을 꺼내 들고, E에게 그것을 강권합니다. 주인공은 E의 사정을 알기에 큰 결심을 하고, 흑기사를 자청하며 술잔을 받아듭니다. 이때 이야기 서두에 심긴 복선이 드러나는데, 평소 제멋대로인 윤 부장이 술을 못 먹는 직원에게 술을 강요하다가 그 직원이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회고에 등장하는 ‘정 대리’가 다름 아닌 주인공 자신이었던 겁니다. 이 사건은 부장이 산 채로 술에 담가진 뱀의 저주에 걸려 쓰러지면서 일단락되고요. 여기서, 소설은 사랑이 전제된 관계의 또 다른 비밀을 말합니다. 단지 상대에 대해 안다고 해서 그것을 사랑이라 할 수는 없다고요. 그 정보가 실질적으로 상대를 돕고 지키기 위해 활용될 때, 우리의 ‘앎’은 비로소 진짜 앎이 되고 사랑은 진짜 사랑이 되는 것이니까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모호해 보일수록, 우리는 그것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뚤어진 사랑’이라는 말로 가해와 폭력이 포장되어서는 안 되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는 동안 생겨나는 일들은 단순한 문장들로 서술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다중적일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사랑이 우리를, 사랑하는 상대를 삼켜버리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너무 외로워서, 차라리 사랑을 버리자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사랑을 주는 행위와 받는 행위 그리고 외로움과 사랑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그러니까,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끝없이 사랑하고 끝없이 외롭겠지요. 하지만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가, 그리고 그가 사랑하고 그에게 사랑을 주는 내가 적어도 혼자일 때보다는 조금 덜 쓸쓸하면 좋겠습니다. 상대에게 잡아먹히지도, 상대를 잡아먹지도 말자는 다짐은 자주 지켜지지 못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또 누군가를 사랑합니다. 다시 배가 고플 것을 알면서 식사를 하고, 끝날 것을 알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가 나를 잡아먹는다면, 내가 E를 먹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저주할까?’ 하는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로 퇴근길 E와 손을 맞잡는 주인공처럼요. 형식과 주제의식이 닮은 두 이야기, <나는 먹는 것>과 <요리사와 단식가>를 번갈아 읽으며 허기와 외로움, 그리고 먹는 것과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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