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께서 ‘뒤통수를 치는 코스믹호러’라고 설명을 해 주셨는데, 읽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 작품,
‘몽마는 황제를 삼키지 않는다’는 브릿G 독자분들의 독서욕을 자극할 만한 재미있는 단편 호러입니다.
캐릭터 지상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저는(이렇게 쓰니 뭔가 거창해 보이는데, 글을 읽을 때 인물의 매력을 중시한다는 하찮은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의 캐릭터에 빠져버렸습니다.
주인공인 에릭의 퇴폐적인 매력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레스타트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야기의 진행은 둘째 치고 갑자기 달려들어서 제 목을 물어도 행복할 것 같은…(…)
작품의 배경도 몽환적인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적합한 무대이고, 서두에서 장편 소설의 연대기를 적어놓듯이
써내려간 프롤로그도 맘에 드는군요. 중편 이상이 되었어도 너무 좋았을 것 같은 단단한 짜임새를 가진 작품입니다.
짜임새를 이야기하자면 이것 또한 제가 좋아하고 이렇게 쓰고 싶은 스타일의 진행을 보여주는데, 여러 개의 열쇠가 열쇠 구멍에 하나 둘씩 들어맞으면서 결국 무서운 게 들어있는 상자가 열리게 되는 것처럼 서서히 긴장감을 끌어올리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높여주는, 그러면서도 쉽사리 결말을 유추하는 걸 허락하지는 않는 정석적이지만 산뜻한 파국이었습니다.
몽마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를 지나 태평 성대를 누리던 왕국에서 다시 등장한 몽마는 오랜 평화 속 유약해진 황제가 상대하기엔 버거운 상대였습니다. 사실 몽마는 여러 판타지에서 하급 요마로 취급되는 녀석인데, 이 작품에서는 당당히 코스믹 호러 속 절망을 불러오는 궁극의 존재로 격상되었네요.
동네 입구에 현수막 걸고 잔치라도 해야 할 만한 천지개벽급 레벨업이긴 합니다만, 또 그게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매력있게 다가오는 건 작품 전체에 흐르는 묘한 퇴폐적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에릭과 요나스는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왔습니다. 요나스는 침착하고 단단한 성품의 에릭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죠. 둘 사이에 흐르는 브로맨스의 향기는 이미 심장이 굳었다고 생각했던 제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군요(응?)
차근차근 긴장의 단계를 높여나가는 작가님의 기술도 훌륭합니다. 판타지 세계에 생뚱맞게 왠 커피일까? 라는 짧은 생각을 했던 저는 결말을 보면서 역시나! 하는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네요.
작가님의 말처럼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치는 반전은 아니었지만, 완성도를 높이는 훌륭한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있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정말 많은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을 볼 때마다 다시 느끼게 되는 건 수많은 진주 사이에 묻혀 있어도 결국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빛을 낼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독자 여러분도 재미있는 중세 코스믹 호러 판타지와 함께 긴 겨울밤을 보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작가님께는 이 멋진 캐릭터가 왜 이대로 이야기를 끝내야 하는가에 대한 아쉬움 이외에는 다른 불만 거리는 없습니다. 바쁘시면 외전이라도 굽신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