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중 인물들이 꽤나 귀엽고 매력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무릇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듣고 긍정적인 말을 들으면 최종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법인지라 몇몇 사항을 지적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벙커 건립 계획이 7살짜리 아이에게서 나오는 장면이 꽤나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적선 얘기를 보고 제가 처음 떠올린것이 옐로스톤 국립공원같은 지대가 낮은곳은 좀더 안전하겠다 였는데 역시 전문가들이라면 능히 지하벙커를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작중에서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모습, 그러나 현실에 두려워 하는 모습이 조명되기에 7살 아이의 활약이 나오는 것도 주제에 맞겠지만 역시 현실성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두번째로 이배우의 너무니없는 기행을 꼽고자 했으나 인물의 성격 정도야 현실성 측면에서 허용될 수 있기도 하고 이배우는 초현실적인 존재로 묘사되는지라 제외하고, [지하에서 올라오는 적선]을 두번째 지적사항으로 꼽겠습니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적선은 원래 초반부터 적발되었어야 했습니다. 심해 탐사선이나 시추선 등등의 장비들은 지하에 깊에 관여되어있기에 지하3000m까지 적선이 올라왔다면 곧장 해외 외신들에서 보도가 나오고 국민들이 알게 되어야 정상인데 그렇지 못했단 점에서 의아합니다. 또한 그렇게 적선이 올라온다면 맨틀은 사라질 것이며 지구는 자기장의 소멸로 인해서 갖가지 재앙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리 현실성이 높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하에서 올라오고 상공에서 내려오는 적선 이라는 소재는 분명 매력적인 소재이기에 이 부분은 수정하는 것이 더욱 작품성을 해칠 것 같네요. 그래도 현실성의 소실은 다소 아쉽습니다.
주인공이자 1인칭 관찰자인 유린은 망상도 많고 톡톡 튀는 매력이 있는 캐릭터로 보입니다. 작중에서 하얀 블라우스를 입던 주인공이 갑자기 맬빵바지를 입고 몽둥이를 들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정정하는 모습이나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지겨워하는 모습이나… 모두 주인공의 상상을 통해 표현되지만 저한테도 그런 모습이 상상이 되어서 재밌었습니다. 그 외에 분량의 6할은 주인공의 생각이던데 읽다가 스킵하게 되는 부분도 꽤 있었으나 한 인물의 상상을 어떻게 이렇게 다양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지 놀라웠습니다. 더군다나 다른 인물들보다 상상이 많은 것으로 표현되는 인물인데도 말이죠… [ex)계속 쓰잘데기 없는걸 생각하다가 김밥 옆구리를 터트리는 모습.]
밀당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혜린의 계략에 넘어가는 모습도 순수해보이고 귀여웠습니다. 그러면서도 갑작스레 소리를 지르거나 폭혁을 행사하는 모습은 수없이 많던 망상의 실현이랄까 내제되어있던 본성의 발현이랄까.. 작중 인물들에게도, 독자에게도 반전매력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이 인물의 가장 인상적인 대사를 꼽자면… 애들아~ 연애하자~ 를 꼽겠습니다. 지금도 머릿속에 울리는 것 같네요…
샛별 선생은 수많은 남자들을 후리고 다니면서 주인공에게는 그거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인물이죠 이렇게만 보면 악역으로 보이고 첫 등장부터 주인공의 비호감 어린 생각을 이끌어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티 없이 맑고 헤맑은 말투로 자신의 연애사를 설명하는 모습은… 순수해보이고 귀여웠습니다. 이게 샛별이 사용한 어휘 때문인지, 말투 떄문인지, 그 내용 때문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네요. 다만 많은 독자들이 샛별을 귀엽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작중에서 2번이나 얻어맞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쩌면 가학심을 자극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뺨 한대 맞고 기절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샛별이가 주인공보다 귀여웠습니다. 그러니까, 작중에서 제일 귀여운 인물이 샛별이었다. 이 말입니다.
윤미혜는 지적이고 직설적인 인물로 나오죠. 주인공이 여자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단정하고 뼈아픈 가설을 소개하는 모습은 꽤나 재밌었습니다. 개성있는 캐릭터를 잘 설정해내신 것 같습니다. 최혜린은 이 작품에서 몇 안되는 사실성 있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샛별의 문란한 삶에 혐오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모습이나 그 행동양식이나,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죠. 딱히 귀여운 캐릭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배우는 첫 등장부터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길거리에서 연기를 하는 그 모습은 꽤나 참신했습니다. 그 뒤로도 상식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많이 보이는데 작중에서 가장 기괴한 캐릭터로 보입니다. 두번째로 기괴한 등장인물은 주인공이죠. 스스로는 아닌 척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망상과 그 내용은 정말… 사람인지조차 모를 존재와 기괴함 경쟁이 되는 주인공이라니! 놀랍군요! 아무튼 주인공의 기괴한 망상이 사람이 된다면 이배우처럼 행동할 것 같네요. 작중에서 통통 튀고 활기찬 모습을 보이지만 주인공을 2시간이나 기다리고도 화 한번 내지 않은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배우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행복한 결말이나 내용을 갖는 작품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불행한 결말을 가진 작품을 혐오하는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시간들여서 작품을 읽는데, 그 작품을 읽으며 끝에 미소를 짓고 기뻐해야 하는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갖고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있어서 이 작품은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미혜와 주인공의 부모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긴 하지만 비중이 적은 인물이라서 읽는데 별로 슬프지 않았고 (부모님이 죽은 장면인데 별로 슬프지 않은건 작품의 표현력 부족인건가…? 아무튼 보기 좋았습니다.) 주인공의 성공적이지 못한 도움으로 고통을 받은 학생과 훗날 만나며 긍정적으로 풀리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적과 포옹하며 상황이 안정되는 모습만큼 보기 좋은 장면은 없죠. 그리고 마지막의 결말이 긍정적이기도 하고… 읽는 내내 적절한 긴장감이 유지됨과 동시에 빵 터지는 웃긴 장면들이 많이 들어가서 좋았습니다.
이렇게 재밌고 웃긴 작품은 마법과 초능력이 난무하는 판타지 소설 중에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작품을 읽고나니 그렇지 않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작중 인물들이 매력적이고 귀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과 샛별… 보고 또봐도 귀엽네요. 좋은 작품 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