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有)
사람들은 ‘혁명’이라는 단어 뒤에 묵직한 사상 그리고 쇠와 피의 비린내가 따르길 기대한다. 역사책이나 소설책에서 으레 보아온 풍경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 혹은 비현실 속 모든 혁명이 늘 그렇게, 급박히 그리고 처절히 굴러가기만 하는 것일까?
혁명의 원동력이 되는 감정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분노이다. 그러나 분노는 타오르는 불같은 것이다. 불은 장작을 끊임없이 공급하지 않는 한 스스로 태우고 갉아먹고 마침내 스러지기 마련이다.
사람은 24시간 내내 분노할 수 없다. 이야기 속 주인공 정연의 친구도 아마도 스트레스로 추정되는 요인에 의해 암에 걸려 죽지 않았던가. 물론 혁명 관련 스트레스만이 삶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 초년생인 정연에겐 본인이 혁명의 메시아라는 사실보단 회사 생활이 더 현실적인 위협이며 스트레스의 근원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래. 정부가 사기를 쳤네! 그것도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로 사기를 쳤다. 죽어서 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별이 되기 위해 죽임당하는 거였다. 죽음의 주체는 인간도 아니고 과학이나 신비도 아닌 정부기관이었던 것이다.
진실은 지렛대와도 같아서, 힘이 가해지기 전까진 아무것도 아니다. 마치 주인공인 정연이 제 인생에 얽힌 비밀을 모르고 살아갈 땐 그저 평범한 시민 중 하나였던 것처럼.
그러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정연은 혁명을 위해 당장 한 몸 불살라야 하는가? 누군가 정연의 삶이 그렇게 굴러가도록 밀어붙였다면 정연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정연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다. 정연은 그저 한 개인의 생을 살아도 되었다.
바로 그렇게, 이야기 속 혁명은 약불로 서서히 졸여졌다.
진실을 깨달은 정연이 그저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란이 된 것이다.
혁명 세력과 행운이 정연에게 60년이라는 세월을 허락했기에, 정연은 통찰력이 생겼다. 역사의 속성 중 일부를 간파했고, 체제에 있어 더욱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계속 고민했어요. 일단 버티자. 버티고 버티며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다.”
정연의 고민은 옳았다.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였다. 생명이, 존재가 그 자체로 부조리한 체제에 반항했다. 비단 메시아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더 나은 무언가를 찾는 생명의 습성이 체제에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어찌 보면 싱거운 이야기이다. 젊은 영웅의 비장한 요절도 없고, 동료 사이의 눈물겨운 희생도 없다. 이 이야기로 모든 혁명의 모든 속성을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러나 모든 재밌는 이야기가 그렇듯이, 이 작품은 진실을 몇 조각 품고 있다. 발견하는 것은 읽는 이의 몫이다.
p.s) 페일에일 대목에선 진한 조지 오웰 <1984>의 향기를 느꼈고, 바로 그 때문에 필자는 혹시 이 이야기도 1984처럼 웃기 힘든 엔딩일까봐 걱정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