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대가를 치르라! –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 의뢰(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dorothy, 17년 5월, 조회 148

.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이라는 제목 아래로 소제목들이 나열되어있어 단편집인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연관 없어보이는 이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징어먹물 스파게티

케이프타운, 남아프리카공화국

플라나리아

미즈사와, 일본

우누칼하이

두 번째 소제목을 단 글을 읽고서는 깨달았다. 단순 단편집인 줄 알았는데, 연작 이었다.

 

 

 도대체 오징어먹물 스파게티 에게 왜 이러는 거야?

처음 읽었을 땐, 묘사가 과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눈에 보이는 듯한 상세한 묘사도 좋지만, 이게 그렇게 중요하게 묘사될 일인가? 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또, 아내의 목 근처에서 라벤더 향수의 향기가 흘러내렸고, 곧바로 비린내가 난다니. 이게 무슨 조합인가 싶었다. 오징어먹물 냄새가 난다 서술하긴 했지만, 비릴 정도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을 뿐더러

  기다란 면이 포크에서 늘어져 여전히 접시에 닿아 있었지만, 아내는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조금 숙이더니 포크에감긴 면발 덩어리를 목구멍 깊숙이 빨아들였다. 아내의 작고 도톰한 두 입술 사이로 새카만 면발 여덟 가닥이 가슴 높이까지 내려와 출렁거렸다. 바다 깊은 곳에 사는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하얀 접시 위에서 검은 면발들이 몸을 섞고 있었다. 집단교미하는 벌레들 같다. 하지만 가짜다. 모두 살아있는 진짜 면을 본 적이 없다. 먹어본 적도 없다.

아내가 면을 먹는 장면과 파스타의 모습을 이렇게도 괴기스럽게 표현한다니..?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했었다. 그러나 작품의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나는 이 모든 묘사의 필요성에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아, 이래서..!’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지? 케이프타운, 남아프리카 공화국 의 식당에서는.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고 하던가. 처음과 두 번째 소제목을 이끌어가는 이 남자는 ‘우연히’ 만난 홈리스 청년에게서 천 원도 안되는 금액의 대가로 식당가가 몰린 골목을 추천받는다. 홍수의 여파로 문을 연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으나, 빛과 냄새가 흘러나오는 식당을 ‘우연히도’ 발견한다.

비가 왔는데도 바싹 마른 골목,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는 웨이터, 이름모를 식재료와 말없이 칼을 가는 주방장이 뒤섞여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무언가’가 숨어 있을 법한 해초 안에선 언뜻 무언갈 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 그러나 하늘거리는 해초도, 살아 있는 듯 파닥거리는 식감의 조금 두꺼운 듯한 면발도 그렇게 매혹적일 수 없어 다른 것을 모두 잊게한다. 긴장도, 불안도. 그리고는 뒤통수에 따라붙는 웨이터의 한 마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겁니다. 오늘 하루가 죽을 때까지 당신을 따라 다닐지도 몰라요.”

 

이에 걸맞게도, 그 남자와 독자를 끌어당기는 바로 그 음식은 ‘생생하다’라는 말에 다 담지도 못할 만큼 매혹적이다.

검은색 소용돌이가 내 손을 덮치기라도 할 것처럼 포크를 타고 올라왔다.

같은 표현이라든지,

마치 면이 살아있는 것처럼 입속에서 탄력 있게 미끄러지고 파닥거리며 기묘한 식감을 만들어냈다.

(중략)

통통한 면의 담백한 기름기와 어우러지자 그 조화로움에 혓바닥에서도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아 전율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와 같은 묘사는 뒷덜미가 선뜩할 만큼의 아찔함을 선사한다. 마치 에일-르에 앉아 음미하는 듯, 음식에 빠져드는 듯한 체험은 독자로 하여금 이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게 만든다. 가장 유혹적인 챕터이면서도, 어쩐지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찝찝한 끝. 과연 이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린다.

 

 수십조각 난 플라나리아 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에일-르의 그 환상적인 요리는 남자로 하여금 자다 말고 아내의

오징어먹물 스파게티를 모두 게워내게 만들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 플라나리아를 커터칼로 수십조각 내 담임에게 죽도록 맞은 기억이 있음을 회상한다. 피라냐에게 씹혀먹혀도 살아날 수 있을지 궁금했던 그. 단순한 호기심이 그를 아프게 했다. 케이프타운에서의 단순한 배고픔은, 그를…

 

 미즈사와, 일본 에서는 우누칼하이 의 이야기를 하지.

이번엔 일본이다. 이 작품은 한국부터 남아공, 일본까지 어디든 넘나든다. 파스타, 그렇게 불러도 좋다던 에일-르의 메뉴는 검은 기름국수로 변모한다.

일본의 에일-르에 찾아온 천문학자는 한참 동안이나 뱀자리의 알파별이라는 우누칼하이의 이야기를 떠든다. 그리고는 역시, 에일-르의 메뉴를 즐기고는, 떠난다.

17년마다 한 번씩, 3일간 별 표면의 온도가 1000도 이상 떨어져 붉게 변한다는 우누칼하이. 그 별에는 과연 17년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묘한 느낌의 글이다. 가슴을 조이는 엄청난 긴장도,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는 긴박감도 없다. 그러나 어쩐지 뒷목의 털이 쭈뼛 서는 듯한 느낌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처음 맞이한 당신이 중간까지의 수많은 의문들을 참아 넘긴다면, 마지막 챕터에 가까워질수록 진성 호러의 소름이 찾아올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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