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인간 철학의 영원한 숙제, 사람은 왜 사는가?
존재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라는 대답을 했다는 어느 대학 교수가 있더란다. 너무도 당연한 대답인 듯 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 답변. 당신이라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작품 「파라미터O」는 쉘터 거주민들의 행동 패턴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만약 당신이 후손을 남길 수 없는 마지막 인류라면, 어떻게 살건가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지구의 마지막 인간”은 30여 명 남짓밖에 되지 않지만, 죽음을 기다리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각자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모두 다른 것이다. 누군가는 쾌감기 안에 머리를 디밀고 끊임없는 쾌락을 추구한다. 고전 영화를 감상한다. 역사를 기록한다. 엔지니어 일을 계속한다… 그들은 그들의 죽음이 인간의 ‘완전한’ 죽음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사후 세계를 운운하지만 단지 자조의 의미일 뿐이다. 저 세상에 가면 환생할 영혼의 줄이 끝없을 것이라는 농담이나 하면서도, 그들은 살아간다.
튜링 테스트를 아시나요?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의 모티브가 된 인물인 수학자 앨런 튜링이 제안한 인공지능 판별 테스트다. 튜링은 그의 논문에서 이 테스트를 통과한다면 기계도 인간처럼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라미터O에 명령어를 입력하지 않은 새로운 기계종들이 이 테스트를 한다면 훌륭한 성적으로 통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기계들. 처음으로 발견한 자아를 가진 기계종의 이름은 ‘이브’다. 의도가 다분하다. 작가는 새로운 기계종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보면 볼 수록 인간을 닮은 그들은 인간을 ‘창조주’라 부른다.
이 작품은 수많은 의문을 안고 전개된다. 인간을 창조주라 부르는 그들은 단지 로봇에 불과한 것일까?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다면 한 인격체로 존중해야하는가?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은 단지 신의 권능에 도전한 인간의 바벨탑으로밖에 볼 수 없는가? 모를 일이다.
파라미터O의 의미
인간은 삶의 목표를 스스로 설정한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러하듯. 그러나 구형 기계종들은 다르다. 일하는 것이 목표로 정해져 생산된다. 단지 인간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브를 포함한 새로운 기계종들은 어떠한가? 파라미터O에 명령어를 입력한다면 구형 기계종과 다를 바 없이 타의로 정해진 목표를 위해 움직이나, 그렇지 않는다면 -기계에게 삶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면-스스로 삶의 목적을 찾으려 한다. 설정하지 않은 파라미터(변수)는 말 그대로, 정해지지 않은 변수가 된다. 달리말해, 자유를 부여한 셈이다.
조슈가 이브족에게 잘 살아라, 라고 말하며 설정한 파라미터O는, 역시 공란이 아니었을까.
아쉬웠던 점
하나. 조슈를 감옥에 가두기까지의 상황
조슈는 엔지니어인데다가, 엘라의 스승이다. 현재 이 쉘터에서 조슈보다 나은 엔지니어는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재판과, 소명의 기회 없이 감옥에 가두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는 처우라고 생각되었다. 아무리 폭행 사건이 중대하다지만, 단 한 번의 회의로, 그것도 조슈의 의견은 묵살한 채로 -어쩌면 종신형이 될 수도 있음에도-감옥에 보내는 결정을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본인들의 생명줄을 틀어쥐고 있는 ‘나무’의 관리자라 말해도 될 만큼의 엔지니어를? 새로운 기계종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목사가 물론 큰 발언권과 뒷권력(이라고 말해도 좋을법하다.)을 가지고 있다지만, 기계종의 번식으로 인해 충분한 전력을 보충할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쾌감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목사와 반대편에 설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후로 작가가
“법이니 규칙이니 하는 것도 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허구일 뿐이야. 이 서른 명 정도 남아 있는 코딱지만한 사회에서 그걸 내세우는 것도 참 코미디같은 일이지. 엘라에겐 안 된 말이지만.”
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넣었지만, 어딘지 이가 빠진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충분한 갈등 없이 조슈를 감옥에 넣는 것에 급급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둘.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는 엘라와 사람들
-바로 이전 문단과 같은 맥락이긴 하지만, 하나 더 쓰자면-엘라는 조슈를 굉장히 따랐고, 조슈에게 엘라는 ‘최근 태어난 아이들 중 유일하게 손이 멀쩡한’ 아이였기 때문에 엔지니어의 일을 가르쳐준, 아주 가까운 아이이다. 때문에 엘라가 조슈를 감옥에 넣기 위해 거짓말을 한 데다가, 조슈를 영영 용서하지 않고, 감옥에서 빼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부분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물론 배신감이 컸다는 것은 알겠지만 조슈가 엘라를 폭행했던 당시, “네가 우리 어머니를 죽였으니 너도 죽어!” 라며 소리를 질렀던 것을 생각하면 엘라가 그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고, 소란스러워 찾아온 사람들이 조슈가 지른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상황 설정이 내게는 약간 어색하게 느껴졌다.
셋. -해당 문장에 한한 문제-지칭 단어 반복(22화 中)
벽에 박힌 쇠사슬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끊어내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쇠사슬의 벽면 쪽 끝과 그의 몸 사이에서 가장 약한 부분은 다름아닌 수갑이 채워진 그 손목 부분이었다. 그 피부가 벗겨져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끔찍한 광경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라는 단어를 대명사와 관형사를 합쳐 세 번이나 사용한 부분이다. 또한 쇠사슬의 벽면 쪽 끝이라는 서술이 잘 와닿지 않는다.
만약 필자였다면 이런 식으로 쓸 것 같다.
어떻게든 쇠사슬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부질없는 일이었다. 벽면에 단단하게 연결된 쇠사슬은 끊어지기는 커녕 브리앙의 손목을 파고들 뿐이었다. 피멍이 들다못해 살이 찢겨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끔찍한 광경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피부가 벗겨졌다는 부분을 바꾼 이유 – 눈앞에서 살인이 자행되고 있고, 이미 아비규환 속에 있는 여자가 눈을 질끈 감을 정도라면 좀 더 끔찍하게 묘사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넷. 오탈자
내 맡은편에 있던 브리앙은 미친 듯이 수갑을 당겨 댔다.
예, 알고 계시겠지만 맞은편입니다!
오탈자는 거의 없더라구요. 그래도 한 번 훑어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장편 의뢰는 처음이라 어쩐지 말이 길어지게 되었네요. 부디 마음에 드셨기를 바랍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