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4부작으로 되어있단 사실에 흥미가 끌려 살짝 들춰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도 흥미로운 내용에 정신없이 빠져들었죠. 읽기 시작했을때 사무실에서 몰래 읽은 거였어서 1편밖에 못 보았지만 내용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더군요. 어제 새벽에 나머지를 단숨에 읽어내렸습니다.
표정을 훔칠 수 있는… 훔치지 않으면 앓기까지 하는 아이. 오로지 표정을 갖기 위하여 자기 자신마저 도구로 쓰는 모습이 왜 그리 안타깝게 느껴지던지. 여러 사람으로부터 수 많은 표정을 훔치고 가장 원하던 표정도 얻어냈지만 결국에 그래서 정말로 행복했는지는 모를 일이겠지요. 단지 표정을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왔으니 결말 뒤의 삶은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아영의 표정을 갈망하던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분명 장르는 스릴러 쪽이 맞는데 이게 사실은 로맨스였나 싶기까지 했죠. 그렇게 생각해보니 사실상 주인공이 표정에 보이는 태도는 사랑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더라고요. 열병을 앓는 것 까지도 말예요.
마지막에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표정만으로 구분하고 알아 볼 수 있는 점도 상당히 인상깊었어요. 마치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실제로도 살인을 저지르면 마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처럼 그 전과는 달라진다고 하죠. 심지어 타고나길 싸이코패스로 타고난 사람들도 살인을 저지르면 약간 더 이상해진다고 해요. 저는 늘 그것을 인간의 도리를 저버려 미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글에서는 그것이 마치 무언가로의 진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의 진화. 혹은 변태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표정의 궁극(처럼 보이는 것)에 도달했지만 과연 주인공은 그것이 제목인 ‘사람의 얼굴’과는 가장 동떨어져 있단 것을 알까요. 다른 인간들이 그 표정을 대할 때에 느끼는 호감은 사실 호감보다는 더이상 사람이 아닌 위협적인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복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읽으며 약간의 의문이 들었던 점은 2편에서 유리의 ‘무표정’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정도였습니다. 정말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은 때로는 궁극의 슬픔을 느끼게 하기도 하니까요. 감정은 얼굴 뿐 아니라 몸에서도 드러날 수 있기도 하고요. 전날까지 엄청나게 슬퍼하던 아이가 정말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이 되어 있다면 되려 너무 슬퍼 미친것이 아닌지 생각할 것 같아서 말예요. 실소를 짓고 있다면 더더욱 실성한 것이 아닌지 싶을것 같고요. 물론 표정을 훔친 주인공과 빼앗긴 유리의 극단적인 비교를 위한 배치였으리라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감정이란 오롯이 얼굴 표정에서만 드러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다만 반대로, 표정을 빼앗긴 이들이라도 어떻게든 감정을 나타내며 살 수는 있었을거란 약간의 희망적인 관점도 생각하게 됩니다. 미소대신 미소 짓지 않는 온화함을, 비통함 대신 미소띈 슬픔을, 찌푸린 얼굴 대신 차가운 분노를 나타내 보일 수 있을테니까요. 추운 겨울에 쌓인 차디 찬 흰 눈에서 포근함을 느낄 수 있듯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