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브릿G에 올라오는 괴담 장르 작품 대부분이 단편적이고 에피소딕한 성격을 띠고 있고, 나 역시도 괴담 러버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장르적 문법에 익숙한 편이긴 하다. <비읍시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로 화자의 옛 일화를 짧은 호흡으로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나, ‘비읍시’라는 어딘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는 가상의 공간적 배경과 ‘나’라는 인물의 고정성이 산발적인 여러 일화를 묘하게 아우르며 어떤 통일성을 부여한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나 나 역시 학창시절을 또 다른(?) 비읍시에서 보내며 연합고사, F마트(편의점)와 H펜의 시대를 지냈던 탓인지, 이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그저 평범한 일상의 기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전에 영화 <벌새>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인간의 삶에는 늘 먼지처럼 아주 기묘한 흔적과 기억이 부유한다. 그런 학창 시절을 지나, 아르바이트나 이러저러한 경제 활동을 거치며 빠듯한 경제력을 갖추자마자 우리가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게 묵은 대청소를 하듯 그 묘한 흔적을 지워내고 이내 우리의 삶에 애초에 그런 일이 있은 적 없는 듯 살아가는 일이라는 점이 새삼 인간 삶의 아주 기묘한 지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런 식으로 ‘어른’이 되었다.
<비읍시 이야기>는 이미 흘려보낸 시간의 기억을 지닌 이들에게 묘한 향수를 자극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는, 이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완연한 과거에 갇힌 기억을 안전하게 회상케 하는 매개가 되어준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한참이나 잊고 있던 소소한 추억 몇 개를 건져올렸다.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고등학생 시절의 친구와의 첫 만남이 사실은 고1 새학기 때가 아니라, 그보다 몇 달 전 한 가톨릭 중학교 중3 연합고사 시험장에서 앞뒤 자리로 만난 때였다는 거라든지 하는 시시하지만 신기한 우연 같은 기억들 말이다. 하지만 대체로는 밀려오는 과거의 기억을 허우적거리며 더이상 그런 삶을 살지 않아도 괜찮음에 감사하며 읽었다.
그런 의미에서 <비읍시 이야기>는 아주 훌륭한 괴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비읍시를 떠나 이응시 주민이 된 것도 이제 꼭 10년이 되었다. 요즘도 친구들을 만나러 종종 비읍시를 방문하지만 내가 살던 그 시절의 비읍시는 이제 전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어쩌면 나를 비롯해 그 당시 비읍시를 살아가던 이들의 머릿속에 먼지처럼 남아 부유하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