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응 작가의 <고양이의 비밀>은 제목처럼 고양이가 남긴 암호를 추리하는 코지 미스터리물이다. <고양이의 비밀>에는 애묘인이라면 공감 가능한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 고양이는 반려동물로서 인간과 한가족으로 살아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 같은 것이 한 겹 끼어 있는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기분 내키면 응석을 부리긴 해도 마치 ‘나는 고양이, 당신들은 인간’ 이라는 선이 그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인간과 고양이는 함께 지내며 서로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을 구석구석까지 생생히 볼 수 있지만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양이에게도 고양이만의 삶이 있고, 응분의 생각이 있고, 기쁨이 있고,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한계를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마음을 교류하는 어느 기묘한 체험의 순간을 맞이하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 이러한 순간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고양이의 비밀>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와도 유사하다. 어느날 하루키가 고양이와 베개를 나란히 하고 자고 있었는데 (수사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배게를 나란히 놓고 누워서, 뮤즈는 사람처럼 베개를 베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게 그런 말을 해봤자…”하는 작은 여자 목소리가 귓전에 또렷이 들렸다고 한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뮤즈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더니, 장수 고양이 ‘뮤즈’는 ‘꿍얼꿍얼, 뭐야, 귀찮게’ 하면서, 토라진 아내 같은 태도로 일어나 이불에서 나와 고개를 저으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마치 고양이가 자신의 중요한 비밀을 무심코 사람한테 들켰고, 그것을 대충 얼버무리려고하는 듯이… 자면서 인간의 언어로 잠꼬대를 하는 고양이라니…
“뮤즈는 같이 살기에 매우 이상적인 고양이였다. 예쁘고, 영리하고, 튼튼하고, 숱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었다. 우리와 고양이 사이에는 늘 가벼운 긴장감이 흘렀고, 그건 그것대로 또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는 흔치 않다.” (장수고양이의 비밀, p. 145)
하루키는 뮤즈를 몇백 마리에 한 마리 있을 귀중한 고양이로, 또 그런 고양이를 만난 것은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하루키는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세상을 떠난 장수 고양이에게 건네는 소박한 마지막 인사임을 책의 후기를 통해 밝히고 있는데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며 지금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뮤즈가 하루키를 생각하는 마음도 동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루키의 에세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 인간이 고양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면 윤지응 작가의 <고양이의 비밀>은 고양이가 인간에게 전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인생에 있어 결과로서의 형태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로 보탬이 되는 것은 좀더 다른 것 아닐까? 인간들끼리도 함께 지내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종과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고양이와 마음을 공유하는 어떤 순간을 체험한다는 것… 그 순간 순간들을 공유했던 인간에게 다음 생을 기약하며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 <고양이의 비밀>의 매력은 읽고 나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로 보탬이 되는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