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릴러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이 소설을 읽으라 답하겠소!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사랑해, 송곳니 (작가: 파랑파,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6월, 조회 123

이 소설 <사랑해, 송곳니>의 도입부를 요약하자면 딱 3줄이다.

 

신의주로 향하는 기차의 일등칸 삼호실에서 두 명의 승객이 사라졌다. 바닥 카펫트는 붉은 피로 흥건히 젖었고, 찢긴 고급 코트 자락과 남성용 구두 한 짝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사라진 승객은 조선 미술계를 대표하는 화가 민완선과 그의 연인이자 조선 ‘최초’의 나체 모델 한목란이었다.

 

상기 3줄의 내용은 동아일보 1936년 11월 4일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소설 도입부에서 소개된다. 바로 이러한 전개 방식이 흥미로운데, 기사를 읽으면서 “뭐야, 경성에 이런 커플이 있었어?” 솔깃해하던 차에 문서 보관실 구석에서 백 년도 넘은 신문기사들과 씨름하는 국립미술관 3년차 학예사 정다현의 모습이 묘사되기 때문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독자는 정다현에게 몰입한다. 정다현의 직업이 3년차 학예사라던가, 내년에 돌아올 광복 8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미술관에서 준비하는 특별전의 한 꼭지(일제 강점기의 조선 미술)을 다루고 있다는 부연설명 역시 그 캐릭터와 하나가 된 이후에 추가되기에 더욱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다. 정다현도 민완선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고, 독자인 나 역시 민완선과 한목란이 궁금해서다. 독자와 주인공이 ‘호기심’으로 엮여지는 순간이었다.

 

친구와의 통화를 통해서 정다현이 민완선과 한목란에 대해 배우는 동안 독자 역시 배운다. 우리는 똑같은 출발선 상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걸로 보이는 두 연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바로 여기서 ‘스릴러의 문법’을 정말 잘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릴러를 폭넓게 말한다면 서스펜스(불안하고 조마조마한 심리)를 중심으로 하는 플롯이라고 볼 수 있을 거다. 쉽게 말해서 미스터리한 상황, 캐릭터, 사건을 던져주고 독자가 주인공과 함께 ‘그 진실’을 파헤치게끔 한다. 당연히 그 진실에 주인공보다 먼저 다가서는 자는 독자다. 중반 정도 넘어섰을 때, 혹은 소설의 도입부부터 독자는 알고 있다. 주인공이 좇고 있는 자의 비밀을… 언제 주인공이 그 비밀과 마주하게 될지 조마조마하면서 보게하고, 결국에 주인공이 진실과 마주했을 때의 전율, 스릴, 파국 혹은 파멸 또는 희열을 맛보는 것이 독자가 스릴러를 즐겨 읽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독자가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과 주인공이 비밀을 알고 행동하는 순간이 언제일지를 잘 짜는 것일 테다.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건데 주인공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정다현은 퍽퍽한 맛의 전시회에 핑크빛 사랑 한 스푼 첨가한다는 것에 열광하고, 연인과의 사랑의 도주를 꾀하다 행방불명이라니 최고의 결말이라고 박수치는 종류의 사람이다. “엔딩마저 완벽해”라며 경탄하는 정다현의 대사에서 나는 픽 웃었는데,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다. 비극은 돈이 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연인의 비극적인 결말, 사람은 죽었지만 사랑은 영원하다라는 유형의 이야기에 대다수의 사람은 열광한다. 그들이 품고 있는 감정이 이미 드라마틱해서다.

정다현과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어서, 혹은 정다현과 달라서 그녀를 신기하게 여기면서 독자는 이 소설이 향하는 여정을 충분하게 즐길 준비를 갖추기 시작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단 1회 만에. 그렇다, 오랜만에 1화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즈음에서 나는 객관적이고 냉정한 ‘촉’을 세워보기로 했다. 나는 미술을 좋아한다. 예술을 좋아하고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사랑한다. 거기다 비극적 사랑 이야기? 좋아한다. 경성스캔들, 미스터 션샤인, 시카고 타자기와 같은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을 좋아했다. 비극적인 환경에서 청춘은 더 아리땁고 처연하게 꽃피기 마련이고, 나는 ‘극적인 스토리’의 쫄깃함을 즐기는 사람이어서다.

 

그렇다면 이것은 지극히 ‘내 취향에서 오는 재미’일까? 단언컨대 아니다. 그 답은 바로 2화에서 찾았다. 목란을 향한 애모의 감정이 담뿍 담긴 완선의 편지로 시작된 이 회차는 “넌 나보다 죽은 사람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라는 다현의 전 남자친구 대사로 ‘단번’에 분위기를 전환한다. ‘당신 앞에서만큼은 나는 다른 이들과 결코 평등하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것이 설령 나를 지옥으로 떨어뜨릴지라도 그렇습니다’라는 애절한 편지 아래에 저렇게 날카로운 대사라니, 거기다 헤어지자는 이별 통보라니… 나는 또 한번 다현이라는 캐릭터에 이입했다.

잠시간의 과거 회상이 끝난 뒤에 다현은 동료를 돌아본다. 미술을 사랑하는 워커홀릭의 입장에서 동료들을 관찰하다가 다현이 하진을 눈에 담는 순간, 그 찰나의 ‘장면 연출’도 매력적으로 잘했다. 그림에 묻은 찐득한 이물질을 검지로 찍어서 ‘굳이’ 먹는 여자, 거기다가 “달콤하네요”라는 대사라니… 잘 쓴 로맨스의 전제 조건은 임팩트 있는 ‘여성 혹은 남성 주인공’의 등장이 아니던가. 이 장면에서 나는 이 소설, 물건이다 라고 혼자 생각했다. 1, 2화에서 이미 로맨스릴러의 플롯을 잘 가져왔다는 걸 보여줬지 않나. 이거면 중반과 결말이 어그러져도 괜찮은 수준이라고 봤는데 웬걸,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다. 여기서 더 많은 이야기를 풀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오산, 나는 이쯤에서 슬슬 <사랑해 송곳니>의 서평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아, 4가지 단서는 남겨두겠다.

 

첫째, 이 소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의 ‘중심’에는 뱀파이어가 있다.

둘째, 이 소설은 30년대 경성과 현대의 서울을 시공간적으로 오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셋째, 경성에서 미스터리하게 실종된 연인(완선과 목란) 그리고 현대의 하진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

넷째, 완선에게는 세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었지만 그가 동경 유학에서 돌아오고 1년 후에 죽었다.

 

뱀파이어, 로맨스릴러,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사랑해, 송곳니>의 주요 키워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1부는 다현, 2부는 하진 중심으로 그려지는 것처럼 각 ‘부’마다의 구성을 탄탄하게 잡아서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고, 경성과 서울을 오가는 내용을 읽으면서도 헷갈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결말로 갈수록 너무 급박하게 이야기들을 털어내는 느낌이었고, 거두어지지 않은 복선도 있으며, 가장 ‘강렬해야 할’ 절정 부분의 시퀀스가 기대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조금 더 길게 쓰여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서다. 허나 지극히 개인적인 아쉬움이고 전체적으로 쓰여지는 방식이나 캐릭터를 묘사하고 표현해내는 스킬, 소설에 담아낸 정서가 매혹적이었다.

(추가) 나는 이 소설을 리뷰를 올린 뒤에 한번 더 꼼꼼히 읽었다. 여전히 재미 있었다. 내가 리뷰에서 쓰지 않은 나머지 내용들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읽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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