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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샌프란시스코에 오실 때에는 – 1 (작가: Clouidy, 작품정보)
리뷰어: 사피엔스, 20년 10월, 조회 65

※ 본 리뷰는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브릿G의  SF를 열심히 읽어보기로 결심하면서 리뷰를 하나씩 작성 중인데 어째 자꾸 쓴소리를 하게 돼서 작가님들께 송구한 마음입니다.

 

 

 

 

 

 

어제 오늘 Clouidy 작가님의 <샌프란시스코에 오실 때에는>을 읽어보았습니다. 사실 예전에도 1편까지는 읽었었는데요, 2편으로 넘어가질 못 하고 그대로 지내다가 오늘에서야 다 읽었네요.

일단 장르에 대한 의문입니다. 작가님이 이 작품을 쓰실 때 장르를 무엇으로 잡고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추리 스릴러로 보기에는 너무 느슨하고요, SF로 보기에는 SF적인 상상력이 부족합니다. 인공지능이라는 소재가 후반부에 주인공들이 비행기를 탈취할 때 잠깐 유용한 걸로 나오고 끝이니까요. 저는 SF란 우주, 자연, 과학, 기술의 발달에서 느껴지는 경이감 혹은 불안감, 그것들이 인류 사회 혹은 개인의 삶과 심리에 미치는 영향, 이런 것들을 다룬다고 생각해왔거든요. 말하자면 SF는 과학과 기술이 단순한 소재나 소품에 그치지 않고 소설의 전반적인 세계관과 인물들의 가치관을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글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물론 미래 사회이고 현재와 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단순히 시간이 지나서인지, 환경 오염 때문인지, 핵전쟁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아요. 그러한 배경이 사건 전개에 필수적인 것 같지도 않고요. 이 글에서 벌어지는 범죄(불법 약물 거래)도 딱히 흥미롭거나 특이하지 않은 데다 굳이 시대 배경을 저렇게 잡아야 했나, 장소도 굳이 샌프란시스코여야 했나, 이런 의문이 듭니다. (아마도 마지막에 링크 거신 노래와 관련이 있는 거겠죠?) 일반 문학으로 보기에도 인간 본성의 사유나 철학에 대한 고민이라든가 사회 문제에 대한 고발과 같은 깊이가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고전 미국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사건 전개가 느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불필요한 묘사가 많아서입니다. 분량에 비해 시대 배경, 풍경, 특히 인물들의 동작, 심리에 대한 묘사가 과하다고 느껴집니다. 예를 들면 인물의 동작이나 표정만으로도 독자는 그들의 심리를 예측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을 묘사해 놓고는 그 앞뒤에서 화자가 그 심리에 대해 설명하거나 추측하고 있더라고요. 이러면 독자 입장에서는 화자가 중언부언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글을 읽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뛰어가고 싶은데 2인 3각 경기처럼 발이 묶여 걸어갈 수 밖에 없는 것처럼요. 불필요한 묘사를 줄이면 독자는 발에 묶인 끈이 끊어져 뛰어갈 수 있습니다.

인물들 간의 대화도 너무 많고요. 잘 고민해 보시면 여러 줄로 이어지는 대화를 압축해서 두 세 줄의 설명문으로 바꿀 수도 있을 거예요. 이건 소설이지 24시간 리얼리티 쇼가 아니기 때문에 등장 인물들의 대화와 동작과 생각을 일일이 묘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독자는 와, 생생하다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지루해집니다. 대화문은 이 상황에서 대화문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에만 써야 소설이 치밀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OO가 말했다, 라는 문장들 중 상당수는 없어도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 문장이 없이도 독자는 앞의 대화문을 누가 말했는지 예측 가능한 부분이 있거든요. 독자의 입장에서는 누가 말했는지 다 아는데 그 바로 뒤에 OO가 말했다, 라고 나오면 잘 걸어가는데 옆 사람이 갑자기 팔을 붙들어 세우며 ‘다리 아프지? 내가 업어줄까?’ 하고 물어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미 써 놓은 문장들을 지우는 게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저도 짧은 시간이나마 글을 써 와서 잘 압니다. 하지만 소설을 포함한 모든 글은 정말로 필요한 문장과 단어들, 이게 없으면 내용의 전개나 이해가 불가능하다, 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아니면 다 삭제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독자는 이야기를 읽고 싶은 거지 문장을 읽고 싶은 게 아니니까요. 어느 유명한 작가는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 쓴 문장들을 지우면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점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소설 내의 시점이 너무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짐이 주인공인 줄 알았더니 어느새 로버트의 시점으로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줄리아의 시점이 등장했다가 마지막에 짐의 시점이 다시 나오더군요. 그래서 ‘OO는 OO했는지’ 같은 표현의 경우 그렇게 추측한 당사자가 짐인지 로버트인지 아니면 작가 자신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어요.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채택할 것인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채택할 것인지를 확실히 정해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리뷰에 써 주셨는데, 사건과 인물이 틀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드는 건 아마도 연작물의 프리퀄로 쓰셔서 그런 것 같네요. 어리버리하다가도 가끔씩 총기를 발하는 남자 조수와 강단 있고 똑똑한 여자 해결사, 이 콤비가 미래의 샌프란시스코에서 계속해서 활약할 것을 염두에 두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인물들이 펄쩍펄쩍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기가 힘드네요. 남자도 딱히 어리버리해 보이지 않고요, 여자도 그렇게 독특한 캐릭터는 아닌 것 같고요. 로버트와 안드레아가 등장하는 부분을 최대한 압축해서 주변인으로만 보이게 한 뒤에 짐과 줄리아를 부각시킬 다른 묘사가 들어간다면 작가님의 의도가 드러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품 배경이 ‘미래시대+샌프란시스코’ 일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등장해야 소설의 개성이 살아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떠오르는 대로 예를 써 보자면, 미래 시대에는 사라지고 없는 금문교를 어느 악당이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과거로 가서 그걸 통째로 훔쳐 왔다던가…음…?)

샌프란시스코는 몇 년 전에 가 보고 반해 버린 도시입니다. 왜 살기 좋은 도시 1위에 뽑혔는지 이해가 됐으니까요. 풍부한 해산물과 농산물, 지중해성 기후, 다양한 인종, 도시의 풍경도 그렇고, 특히 규모를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로 큰 공원들이 맘에 들더군요. 고층 빌딩처럼 솟은 세콰이어 나무들을 보면서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이 굉장히 부러웠었어요. 공원 한 가운데에 자리한 월트디즈니패밀리뮤지엄은 아예 샌프란시스코에 눌러 앉고 싶게 만들었고요. 소설 속에서 샌프란시스코에 대해 부정적인 멘트가 나오는 건 작가님께서 이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샌프란시스코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을 소설의 배경으로 이용해 주신다면 이야기가 더욱 다채로워지고 작가님의 개성이 듬뿍 묻어나는 작품으로 거듭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짐과 줄리아의 멋진 활약을 기원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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