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휘빈 작가의 <운과 때>를 읽은지는 오래 되었지만 계속해서 마음 속에 맴돌았다. 한동안 TV에서 낙태죄에 관해 이야기가 나왔고, 사람들의 갑론을박이 쏟아져 나왔다. 현실적인 이야기가 고려되어 나왔지만 당사자인 이들의 처지와 상황에 대해서는 고려가 되지 않고 있었다.
<운과 때>는 너무나 사실적인 동시에 현실적이어서 보는 내내 화가 나는 이야기였다. 누구나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는 동시에 소년과 소녀의 사랑의 결말은 늘 소녀가 지는 것으로 끝이났다. 이 글 역시 아이의 아빠가 될 수 있는 소년은 함께 사랑을 했음에도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사회적인 시스템이 그들의 책임으로 물지 않는다. 뒷받침 해주지 않는 상황적인 문제로 인해 그들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결부된다.
소년은 소녀와 뱃속 아이와 함께 한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글 속에서 슬며시 사라진다. 야속하게도 함께 만들어낸 결실의 끝을 소녀가 맺게 한다. 소녀는 자신의 몸속에 스며든 아이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마치 타이밍을 바라보듯 아이를 자신과 분리 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죄의 프레임을 씌어 버리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여실히 드러난다. 누구도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임신을 중단 할 수 있음이 다행이라니.
오로지 소녀의 고군부투하는 내용이 너무나 리얼했고, 누구도 소녀를 품어주지 못함이 아쉽게 느껴졌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낙태에 관한 영상과 피임법에 대해 배우곤 했지만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에 있어서 남녀의 ‘평등’이 아니라 ‘갑과 을’이 존재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주홍글씨를 새겨주기 보다는 법과 사회적인 보호를 통해 소녀들이 운과 때가 아닌 ‘진짜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제는 희미하게 존재를 과시하지 않는 소년들의 모습을 소녀들과 함께 봤으면 좋겠다.
생명을 잉태한 이에 대한 무거움을 인지하고 있으나 상황적인 선택에 의한 이야기가 너무나 씁쓸하게 다가왔던 소설이었다.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채 아직도 그 속에서 소녀들이 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다는 그 말이 너무나 씁쓸하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러한 프레임 속에 갖혀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불편하고 답답한 속내가 욱하고 튀어 나왔다. 법은 잘 모르지만 현재의 실정에 맞는 법 제정으로 아이들이 진정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