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의 식사, 따뜻한 위로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식기 전에 먹어요 (작가: 장아미, 작품정보)
리뷰어: 오메르타, 20년 9월, 조회 115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리틀 포레스트>를 그린다는 상상을 해 보세요. 원래 그가 그린 작품인데 무슨 소리냐고요? 그도 그렇네요. 말을 바꿔 볼게요. <마녀>와 <해수의 아이>를 그린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김태리 주연의 한국판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영감을 얻어서 만들어 내는 새로운 스토리를 상상해 보세요.

장아미 작가님의 <식기 전에 먹어요>는 도시 생활을 하던 윤아가 시골의 고향집에 돌아가 상처를 위로 받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판타지 요소와 따뜻한 한 끼 식사를 곁들여 풀어내고 있어요. 작가님의 유려한 필체를 따라 한 숟갈, 한 젓가락 음미하다 보면 기분 좋은 포만감에 미소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작중 화자인 윤아는 5년 만난 연인과 이별하고 6년을 다닌 회사도 그만두고 나서, 굴러다니는 맥주캔과 와인병만 남은 도시에서 달아나 엄마의 인생이 머물렀던 시골집으로 향해요. 엄마가 태어나던 날 심어진 목련나무는 계절이 맞지 않아 꽃은 피우지 못했지만 낡은 서랍 속 빛 바랜 사진처럼 생생하게 세월을 간직하고 있지요. 대청마루에서 목련꽃을 감상했을 엄마를 그리워하는 윤아를 위해 누군가가 따뜻한 식사를 차려줘요. 엄마를, 엄마의 엄마를 위로해줬던 이가 이제 윤아를 위로해주네요.

나에게 애정어린 관심을 베풀기는 커녕 아무 죄도 없는데 두들겨 맞아야 하는 게임기계 속 두더지 취급을 하던 세상에도 실은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시골길 버스 안에서 차이밍량 감독의 <애정만세> 주인공처럼 흐느끼던 윤아에게 자두맛 사탕을 쥐여 준 할머니, 이별한 연인의 밑바닥을 보고 서럽게 울던 그녀에게 우유라도 마시라며 거스름돈을 얹어주던 택시기사, 호박이며 배추 고구마 감자 등을 한 소쿠리 담아다 마루에 두고 가신 용인댁 할머니, 그리고 몰래 상을 차려 놓는 미지의 존재까지.

이 모든 위로들은 공통점이 있어요. 음식이죠. 구멍난 마음을 메꿔주는 데는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음식만한 게 없죠.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살펴 볼까요. 오믈렛과 데운 야채, 갓 구운 식빵 한 쪽, 우유를 넣은 커피, 두부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와 잡곡밥, 호박줄기무침과 감자고추볶음, 호박전, 그리고 깐풍버섯, 젓갈과 나박김치 등등. 대단할 건 없지만 이름만 들어도 왠지 마음 한켠에 봄이 찾아오는 기분이 드는 메뉴들이에요.

몰래 상을 차려준 이가 누구인지 밝혀지고 윤아에게 음식이 가지는 의미가 어떤지를 독자들이 깨달을 즈음에 마을 청년 호수가 떡그릇을 들고 찾아와요. 그 흐름에 따라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을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내리게 돼요. 바야흐로 결실의 계절 가을이 된데다, 계절은 돌고 목련이 피는 시기는 다시 오기 마련이니까요.

같은 악보와 악기라도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감동이 다르고, 같은 재료와 레시피라도 누가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잖아요. 장아미 작가님의 글은 같은 내용이라도 특유의 담담하고 섬세한 묘사와 꼼꼼하게 다듬어진 문장으로 맛있는 감동을 전해줘요. 작가님의 작품 <로즈버드>가 화려한 플레이팅에 레드 와인을 페어링한 프렌치 코스였다면, 이 작품 <식기 전에 먹어요>는 정갈하게 색을 맞춘 고명을 올려낸 소고기뭇국 같아요. 식기 전에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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