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형태의 추리소설 공모(감상)

대상작품: 거울문자 (작가: 파란약, 작품정보)
리뷰어: 잭와일드, 20년 8월, 조회 46

파란약 작가의 <거울문자>는 미스터리 소설이나 범죄소설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얼핏 보면 정통 추리소설이라고 하긴 힘든 측면이 있다. 내용 자체는 긴박감 넘치고 스피드 있게 전개되고 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밝히고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른바 ‘심장 살인마’와 그 살인마를 모방하고자 하는 자의 미묘한 관계와 동기에 관해서 풀어나가는 구성에서 조금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을 구성하는 3요소로는 주로 “누가 했는가? (Who had done it?), “어떻게 했는가? (How had done it?)”, “왜 했는가?” (Why had done it?)”를 꼽는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이들 3요소를 중심으로 이들 요소 중 작가가 무엇을 중요시하는가에 따라서 소설의 변주가 이루어지는 것을 감안한다면 파란약 작가의 <거울문자>도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 3요소 중 “누가 했는가?”와 “어떻게 했는가?”는 소설의 첫부분부터 독자들에게 빠짐 없이 공개되고 있지만 이 소설은 마지막 요소인 “왜 했는가?”를 중심으로 파편화된 조각들 사이에서 서서히 진실이 드러나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파란약 작가의 <거울문자>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명확히 존재하며, 범인이 남긴 트릭을 중심으로 작가와 독자가 두뇌게임을 벌이는 정통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사건을 일으킨 범인과 그 범인을 모방하고자 하는 또 다른 존재간의 케미스트리로 인해 캐릭터가 변화하는 과정과 사건에 대한 동기를 파헤쳐가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로 다가온다. 예를 들면 원하든 원치 않든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피곤함과 갑갑함을 느끼는 ‘최서후’와 ‘류청하’가 상대와 교감하고 영향을 받게 되는 변화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참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혹시 박사님은 그럴 때 없으세요? 상호작용이 피곤하게 느껴질 때요. 상대의 표정을 보고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알게 될 때. 상대의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게 될 때. 그런 것들이 너무 갑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요.” 

“제가 굳이 하고 많은 동물 중에 뱀을 기르는 이유는 교감할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이에요. 저 녀석이 몇 년 동안 먹이를 넣어주고 보금자리를 치워준 제 손에 이빨을 박아 넣을 때마다 그걸 느껴요. 이 녀석과 나는 단절되어 있구나. 이 녀석이 무슨 생각과 감정을 느끼든 나는 그중 어떤 것도 알 수 없구나. 하고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최서후”의 캐릭터가 “류청하”에 비해 임팩트가 약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나는 거울이에요. 앞에 있는 그 누구라도 비추는 거울. 누구라도 될 수 있고 어떤 살인마의 살인도 인용할 수 있지만 정작 자신만의 형태는 없어요. 잠시 누군가의 상을 비추더라도 그건 내 눈앞에 서있는 누군가의 상이지 내가 아니에요.”

자신만의 형태는 없고 누군가의 상을 비출 뿐이라는 “류청하”의 말과 <거울문자>라는 소설의 제목이 무색하게도 “최서후”는 극의 중심 캐릭터에 걸맞는 임팩트가 다소 부족해보였다. 연쇄적으로 살인사건을 일으키면서도 뚜렷한 증거도 남기지 않고 몇년째 잡히지 않고 있는 ‘심장 살인마’, 범죄현장에 자신만의 특징을 남길 정도로 대범하면서도 자신만의 범행 철학으로 추종자까지 있는 존재라는 인물의 배경과는 달리 정작 독자에게 서술되는 “최서후”는 평범한 외형적 특징 뿐만 아니라 “잡히면 그 뿐이다. 더이 상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되면 안 죽이면 되고 감옥에 가게 되면 가면 된다. 사형 당하게 되면 죽을 뿐이다. 두렵지도 화가 나지도 싫지도 않았다.”는 연쇄살인범 답지 않은 생각을 하고 길을 잃어버린 채 겁에 질리고, 너무나 두려워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아이로 묘사되고 있다. 범인의 이면의 심리를 파헤치는 것은 독자에게 즐거움이지만 캐릭터의 무게감을 고려하면서 미스터리적인 측면을 부각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각 화마다 작가의 코멘트를 읽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소설의 마지막화에 남긴 작가의 코멘트를 보면 이 소설의 결말은 또 다른 이야기의 서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캐릭터가 펼쳐나갈 새로운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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