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ER SPACE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바깥 세계 (작가: 녹차빙수, 작품정보)
리뷰어: 오메르타, 20년 8월, 조회 172

* 녹차빙수 작가님의 <바깥 세계>에 기반한 2차 창작물입니다.

* 원작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반드시 원작을 먼저 감상하신 후 이 글을 읽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녹차빙수님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쿨럭. 코와 입으로 끈적한 전해질 젤을 토해내며 수면캡슐에서 깨어났다. 이 고약한 느낌이 너무 싫지만 워프 드라이브 엔진을 갖춘 우주선 렌트 비용은 감당할 여건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타올로 몸을 꼼꼼히 닦아내고 히터를 가동시킨 뒤 네비게이션 모니터를 켰다. 이 고물 렌트선의 계산이 틀리지 않다면 지구 궤도 도착 3시간 전이었다.

내가 부모님을 따라 M31에 가 있는 동안, 중력이 강한 편인 이 별에서는 5,000년 정도가 지났다. 물론 이 별의 사람들이 우리의 달력 체계를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면 말이다. 부모님이 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고는 해도 내가 왜 지구행을 선택했는지는 나로서도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 특별히 가족애가 강한 것도 아닌 내가, 유일한 혈육이라는 이유로, 의식도 없이 누워있는 동생을 보러 이 변두리 행성을 찾아왔다고 하면,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5km 상공에 우주선을 세우고 텔레포터를 이용해서 지상으로 이동했다. 역시나 강한 중력에 무릎이 덜컥 꺾여서 손을 짚고 납작 업드려 스핑크스 같은 꼴이 되었다. 터번을 두른 노인들이 혀를 끌끌 차며 손가락질을 했다. 대낮부터 사카라 맥주에 거나하게 취하기라도 한 줄 알았을 테다. 예전엔 이 별의 사람들이 모두 우리에게 머리를 조아렸는데, 5천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의 존재도 희미해진 모양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이 별의 사람들이 외형적으로 우리와 거의 비슷해져서 구분이 어려워진 이유가 클 것이다.

그 시간동안 변한 것은 우리의 위상만이 아니었다. 건물들의 모양새도 많이 변했고, 인구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 같았다. 무엇보다 대기의 질이 심하게 악화되어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동생의 피라미드를 찾은 나는 기겁을 했다. 동생이 안정을 취하고 있어야 할 그 곳이 관광지로 개발되어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간 다음 비명을 지르며 점프를 했다. 뒷쪽은 수영장으로 개발하기라도 한 걸까.

도대체 스핑크스 놈은 뭐하고 있었단 말인가! 혼쭐을 내주려고 달려갔더니 역시나 껍데기만 남겨 두고 어디론가 놀러 나간 듯 했다. 나를 흘끔거리며 자기들끼리 수군대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동생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쿠푸야!”

뭔가 잘못되었다. 의식이 없는 쿠푸가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 할 석관이 비어 있었다. 스스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애가 어딜 갔을까. 스핑크스가 등에 태우고 산책이라도 갔으려나. 궁금해하며 피라미드를 나와서 바자르를 구경하는데 플루토에게서 연락이 왔다.

“호루스, 지구 왔다며?”

“응, 좀 전에 도착했어.”

“오랜만에 태양계에 왔는데 얼굴 한 번 봐야지.”

“그래, 마침 아무도 없어서 난감했는데, 지금 갈게.”

우주선으로 이동하려고 텔레포터의 리모콘을 꺼내 들었더니 가짜 파피루스를 팔던 노인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손가락질 하며 소리쳤다.

“어이! 거 지금 뭐 하는 거요?”

나는 그 노인이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줄은 생각도 못하고 그 손가락질의 대상을 찾아 뒤를 돌아 봤다. 그러자 노인이 긴 막대기로 내 손목을 쳐서 리모콘을 떨어트렸다.

“아니, 왜 이러세요?”

“뭐하는 거냐고!”

“네? 친구 만나러 명왕성 가는데요?”

땅에 떨어진 리모콘을 주으려고 허리를 숙였는데 석류 가게 아줌마가 멀리 차버렸다. 주변에 어느새 대여섯 명이 모여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왜들 이러세요?”

“그쪽이야말로 뭐 하는 짓이오?”

“네? 제가 뭘요?”

“뭐긴 뭐야! 남의 별에 내려왔으면 당연히 36일 동안은 중력을 벗어나면 안 되잖아!? 그것도 몰라?”

“네?!”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인지 어이가 없었지만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나보다 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태양계에 새로 생긴 규칙일까. 그렇다 해도 M31 등록증을 가진 내가 그 규칙을 따라야 할 의무는 없었다.

“친구가 기다려서 가야 해요.”

사람들을 무시하고 리모콘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덩치 큰 대장장이가 망치로 리모콘을 내려쳐 박살 내버렸다. 그리고는 망치를 어깨에 걸치고 나를 노려봤다. 나는 위협을 느끼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다.

“호루스?”

부딪힌 상대가 내 이름을 불러서 돌아보니 쿠푸였다.

“쿠푸? 아니 어떻게?”

석관에 누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을 줄 알았던 쿠푸가 멀쩡히 두 발로 서 있었다. 반갑다며 내 손을 잡고 방방 뛰기까지 했다.

“제 가족이에요. 지구에 오랜만이라 몰라서 그런 거니 양해해 주세요. 제가 잘 타이를게요.”

쿠푸가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나를 피라미드 쪽으로 이끌었다.

“아니 아무리 오랜만에 왔어도 그렇지 원… 부모가 뭘 가르친 거야.”

뒤에서 파피루스 장사가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몸은 다 나은 거야?”

스핑크스 앞에서 내가 물었다.

“아, 내가 걸어 다니는 거 처음 보는구나? 청금님 덕분이야!”

“청금님?”

“응, 얼마전에 한국에서 어떤 여자애가 청금님을 각성시켰거든. 그날 이후로 청금님의 은혜가 점점 넓어져서 나도 그 분의 축복을 받고 이렇게 걸을 수 있게 됐어.”

쿠푸는 자기가 한 때 이 별에서 숭배 받는 존재였던 기억 따위는 없는 듯 청금님이라는 존재를 떠받들고 있었다.

“마침 잘 왔어. 오늘 카이로에서 축제가 열리거든.”

“축제?”

“청금님을 기리는 행사야.”

비명소리가 들려서 쳐다보니 피라미드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줄지어 뛰어내리고 있었다. 아까 내가 있던 각도에서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곳에 수영장 따위는 없었다. 그냥 맨바닥이었다. 붉은 핏물이 찰박찰박한 바닥에 150 미터 높이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의 시체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바자르 쪽에서 우와아 하는 비명인지 함성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왔다.

“오 벌써 축제가 시작 됐나 봐! 나도 빨리 가야해. 내가 사제거든.”

쿠푸는 내 손을 잡고 다시 바자르 쪽으로 끌고 갔다.

“사제?”

“청금님은 오랜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 사제 직위를 주셔.”

“오, 오랜 원한이라고?”

내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뭐야? 기억 안나는 거야?”

쿠푸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나는 사실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이 별의 시간이 5천년이나 지난 지금 쿠푸는 기억을 못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우리는 붐비는 바자르 한 가운데로 돌아왔다.

“호루스를 뽑는 날을 앞둔 밤에 나한테 독을 먹였잖아. 잊은 거야?”

바자르의 길은 넘쳐나는 피로 미끌거렸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몸을, 혹은 스스로의 몸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희열에 찬 표정으로 동쪽을 향해 팔을 뻗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 방향이리라.

“독 때문에 꼼짝 못하게 된 나를 석관에 가두고 피라미드에 묻은 것도 모자라 스핑크스를 시켜 지키게 했잖아. 이제 기억나? 그리고는 호루스가 되어서 숭배받다가 인간들이 점점 영리해지자 부모님과 멀리 떠났지!”

시간은 상대적이지만 과거는 변치 않았다.

“이제 내 차례야. 아무 것도 못하는 채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갇혀 영겁의 시간을 겪게 해줄게.”

쿠푸는 사람들 사이를 질주하며 그들의 내장과 피를 뒤집어 쓰고 밤하늘로 솟아 올랐다. 그는 더 이상 쿠푸가 아니었다. 이제 그는 죽음의 지배자, 오시리스였다.

죽음은 달콤한 것. 죽음은 달콤한 것. 죽음은 달콤한 것.

안돼. 안돼.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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