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오브 다크니스 엔진이라는 게 있습니다. 제법 유명한? 혹은 유명했던 TRPG 룰입니다. 그 중에서 ‘메이지 디 어센션’이라는 파트를 살펴보면, 간단하게 마법을 ‘현실을 비트는 힘’이라고 여깁니다.
그들은 늘 자신들은 요상한 술수인 마술(Magic)이 아닌 마법(Magick)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군중(Crowd)를 조심하라고 가르칩니다. 월드 오브 아포칼립스의 세상에서 세상은 물질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공통인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법사는 개인의 의지로 인류의 보편인식을 잠시나마 비틀 수 있는 강력한 의지적 존재이지요.
그렇습니다. 일격입니다.
이 세상에 정의란 너무나도 많아서 셀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어디 누군가가 딱 나와서, 이렇게, ‘정의란 이런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고 세상 사람 모두를 설득했으면 좋겠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나름의 정의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가만 보면 서로가 서로를 불의라 생각하니 어떤 것을 정의라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정의의 일격이 아니라 일격인가봅니다.
굳이 다시 이름을 붙이자면 소신의 일격, 신념의 일격 정도가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강력한 힘으로 현실을 비트는데, 그야말로 마법(Magick)입니다. 군중을 조심해야 하기도 하고, 실패하면 커다란 패널티가 붙는데다, 다른 누군가를 일격의 능력자로 각성시킬수도 있지요.
무엇보다, 전혀 정의롭지 않게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품명은 정의의 일격이나 저는 이 작품에서 정의를 읽지 못했습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일격에 있습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공격과 간섭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악을 위해 더 많이 사용될까요, 선을 위해 더 많이 사용될까요. 그것이 선을 위해 더 많이 사용된다면 굳이 그들을 관리하는 협회나 집단이 나타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인간은 역시 태어나길 이기적으로 태어나나 봅니다.
후회없는 확신이란 것은 두렵습니다. 저 또한 정해전 규범을 어겼지만, 지금까지도 그 결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 그런 일이 하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하게도 그 댓가를 각오해야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회는 부정적인 댓가를 겪을 때 옵니다. 하지만 일격은 그 부정적 댓가를 없애 줍니다.
그렇다면 일격을 자주 사용할수록, 그것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을수록, 점점 후회도 없어지는 악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선한 이는 자신이 휘두른 폭력에 정산될 댓가를 두려워합니다. 하다못해 주인공은 목뼈가 부러져 사람의 죽음을 짊어져야 하는 댓가를 힘겨워합니다. 하지만 악한 이는 어떻겠습니까. 그에게는 일격을 성공하기만 하면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에게 돌아올 댓가가 없으니까요.
가끔 소설가들은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중에서도 저처럼 중세, 혹은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하이-판타지 작가들은 이런 질문을 특히나 많이 받습니다.
작가님은 작가님의 세상 속에 들어가고 싶나요?
아니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중세가 더럽고 냄새나서도 아니고, 가운데가 볼록한 도로 양쪽으로 오물이 고여 있어서도 아닙니다. 무언가를 가진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핍박할 때 후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후회하지 않도록 사회가 그들이 받아들어야 할 댓가의 정산을 지워버리기 때문입니다.
일격은, 아마 일격 사용자도 알지 못하게 그들에게 계급적 우월감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는 정의의 사도인 양, 세상의 정의를 바로세우는 선택받은 인간인 양.
더 무서운 점은, 그것이 설령 선한 이라도 감겨드는 바닥 없는 함정이라는 점입니다. 자신에게 일격의 능력이 있으니, 초법적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확신 아래 상대방을 벌할 권리라도 주어진 양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의 스승은 주인공을 믿는다며 일격을 전수해주었지만…
일격, 이래도 이어져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