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의 주인공은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정신적인 학대에 시달리고 유산을 경험한 여성입니다. 거기다가 남편은 이미 딸이 있으면서 없는 것처럼 속여 주인공과 결혼했으니 소설 속의 말처럼 그녀는 사기 결혼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에요. 보통 현실에 이런 비슷한 사례가 있다면 사람들이 백이면 백 이혼을 하라고 권유를 했을 거 같습니다. 물론 결혼 절차가 어려운 만큼 이혼이란 절차도 복잡하고 힘들기 때문에 꺼려하는 경우도 있고, 이혼이란 선택을 하면 그동안 자신이 애써온 시간이 허무해지는 것 같아 이혼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 주인공이 타임슬립하듯 강점기로 추정되는 과거로 돌아가 말년과 웅복 모자에게 붙잡혀 시달리는 이야기는 현재와는 괴리된 모습이라 읽어가면서 어느 정도 꿈일 것이라는 하긴 예상을 했습니다. 다만 그 꿈이 실제로 있었다는 설정이 아니라 주인공이 남편에게 너무 시달린 나머지 저런 형태로 악몽을 꾸게 된 것은 아닐까 했어요.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꾼 꿈은 비극적인 과거의 사례를 일종의 빙의 상태를 거쳐 경험한 것으로 보이며 꿈이란 것이 드러나기 전까진 괴로운 현실이지만 역으로 앞으로 주인공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 수 있는지 거기서 벗어나야만 하는 것을 알려주는 열쇠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양반집의 하녀였고 주인과 관계를 맺어서 아들을 낳았으나 천한 신분이란 이유로 쫓겨난 여자와 그의 아들은 그 사연만으로는 동정적일 수 있으나 아들과 공모하여 다른 여자들을 학대하는 짓은 그야말로 참작의 여지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보통 불쌍하게 죽은 사람들이 귀신이 될 거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우리나라 토속 신화 속에서 정말 외국의 악마 못지 않게 악랄한 귀신들도 제법 등장하는데 이런 귀신들의 모습은 이야기 속에서 비유된 것이지 실제로는 사람들의 행태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설화 속 악랄한 요괴나 귀신의 모습은 현실 속 인간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말년과 응복이 딱 그런 케이스라고 생각되는데 시기상으로 일제 강점기 때의 인물들로 보이나 충분히 그 시절이라면 있을 법한 느낌의 존재들이라 섬뜩한 느낌을 안겨줍니다. 직접 보지는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요약해서 알려준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줄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현실의 주인공의 남편과 그 가족들이 은밀한 방식으로 사람을 갉아먹는 게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인간의 느낌이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면 이 두 모자는 그야말로 실화 기반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한때는 사회에 의한 피해자 포지션이었을 수도 있어도 애꿎은 여자들을 납치하고 자신들의 대를 잇는다고 강간한 뒤 임신시키는 짓을 반복했다는 데서 그야말로 악귀보다 더한 인간들이며 비록 꿈 속이었다고 하지만 주인공을 고통스럽게 괴롭혔다는 데서 이미 악귀로 소생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악귀가 되어 주인공의 꿈 속을 침범한다고 해도 현실의 주인공은 악몽에서 벗어나면서 그들의 폭력에서 벗어납니다. 꿈 속에서 주인공은 죽음으로써 겨우 악몽에서 벗어나는데 이 꿈은 제가 생각하기로는 주인공에게 이미 해답을 가르쳐주었다는 생각이에요. 학대를 하는 인간들과 계속 같이 살기를 택한다면 남은 삶은 그야말로 지옥 뿐이라는 것. 과거의 여자들은 도망칠 수 없었기 때문에 죽음 말고는 택할 방법이 없었지만 그나마 현재는 이혼이 예전보다 흠이 되는 것도 아니며 주인공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이 있기 때문에 주인공은 과거의 여자들과는 다른 방식을 택할 수 있었을 거라 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기회를 주인공은 후반부에 스스로 발로 차 버린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은 더 이상 착하게 사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녀 스스로 성격을 변화시킨다고 해서 자신을 교묘하게 학대하는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메어있다는 현실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착하게 군다 착하게 굴지 않는다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소설 속 꿈에서 그녀를 죄던 쇠사슬이 현실에서 나타나기 전에 과감하게 탈출을 했어야 했다는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설 속 주인공은 거기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