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 작가의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 : 소울라이크 인 헬>을 읽어 보았다. 강남 한복판에 지옥이 내려왔다는 설정에 끌린 덕분이었다. 과연 그 설정의 맛은 내가 기대한 만큼 참신한 역설이었지만, 그 외의 부분들에서는 미흡한 점이 좀 보였다. 그래도 작가의 창의력이 반짝이는 만큼, 차기작에서는 더 좋은 작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 작품 초반부에 묘사된 지금 청년들의 생활상은 진짜(?) 지옥보다도 더욱 지옥 같다. 어쩌면 ‘강남 한복판에 내려온 지옥’ 자체가, 청년들에게 공공연히 ‘헬조선’이라 불리는 21세기 대한민국 세태풍정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른다. 작품에도 묘사되어 있듯이, 요즘 대다수의 청년들은 생계의 어려움에 시달리며, 그것을 해결하고자 뛰어든 생업전선(아르바이트)에서도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일로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각종 도박에 의존하기도 하고, 배달을 하다가 사고가 나서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입장에 놓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청년들을 도와주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지옥이라 하지 못한다면 대체 어떤 모습을 지옥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이 작품이 가진 참신한 역설의 맛은 청년들의 지옥 속에 강림한 또다른 진짜(?) 지옥이 대한민국을 바꿔 나가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일종의 구원 수단이 우리 사회에 강림하지만 결국 아무도 구원하지 못한다는 역설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날로 달로 더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 속에서,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구원을 추구하지만 결국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다. 지옥이 오기 전에도 그렇고 지옥이 온 뒤에도 그렇다. 심지어 지옥을 불러온 광신적 전도사조차 구원과 거리가 먼 결과를 맞이한다. 이쯤 되면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지옥인 우리 사회에 구원이라 자칭하며 강림한 것들은 또 다른 지옥일 뿐이었다’ 였다고 생각해도 무리 없지 않을까 싶다.
이같이 참신한 역설은 이 작품이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상과 망탈리테를 반영한 데서 나온 결과가 아닐까 한다. 아득바득 노력해 보지만 희망은 없고, 사회가 바뀌거나 혹은 사회에서 빠져나가는 것도 요원하기만 하고, 설령 구원 수단이 강림하더라도 결국은 구원받지 못하고 사회는 지금의 이 모양 이 꼴 그대로일 것이라는 생각이 이 작품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이 자리잡은 곳이 어디 이 작품만일까?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정도는 개인마다 다를지라도, 이런 생각을 어느 정도는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은가?
작가는 이처럼, 가벼워 보이는 이야기 속에 무겁고 현실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이야기를 읽기 버겁게 만드는 점이 몇 가지 있어서 그것을 지적하여 명시하고자 한다.
– ‘ㅋㅋㅋ’ 등 통신체 준말의 사용
나는 소설에서 통신체 준말을 가급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이 부분이 가장 버거웠다. 물론 내용을 구성할 때 카**톡 같은 통신 어플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거나 하면 통신체 준말을 한정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인물들의 대화나 상황 묘사에 통신체 준말을 사용하는 것은 소설의 깊이를 떨어뜨리고 작품의 가치를 저하시킨다.
– 선정적인 대사의 가감 없는 사용
초반부에 주인공을 괴롭히던 래퍼 친구 일행이 나왔을 때, 이들이 선정적인 대사가 포함된 랩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며 ‘꼭 이 정도까지 선정적인 묘사를 해야만 할 필요는 없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브릿G라는 같은 플랫폼에서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작가로서 첨언하자면, 악인을 표현할 때 꼭 수위 높은 묘사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해당 인물들이 대낮에 공공장소에서 선정적인 말을 대놓고 할 만큼 불량하다는 캐릭터성을 부각시키려 한 의도는 이해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성인물로 분류되지 않아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러 독자들이 다 볼 수 있는 작품이니,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적절한 수위를 지켜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 잔혹한 장면의 자세한 묘사
본격적으로 지옥이 등장한 이후 신체 훼손, 싸움 등의 잔혹한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여 읽기 힘들었다. 물론 작가가 독자들이 “콘솔 게임을 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도록” 의도하며 그런 묘사를 했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가는 바이다. 하지만 (바로 앞 문단에도 썼듯이) 이 작품은 성인물로 분류되지 않아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러 독자들이 다 볼 수 있으므로, 적절한 수위를 지켜 주었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 영어 번역어투의 대사 사용
백골이 처음으로 등장할 때 내뱉는 말투가 영어 소설이나 드라마를 번역한 듯 한 번역어투였다. 물론 등장인물이 무슨 어투로 대사를 하든 작가의 자유이지만, 아무래도 대한민국에 온 존재인 만큼 좀더 우리들이 일상 생활에서 들어볼 법 한 어투를 썼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지적을 길게 썼지만, 그 이유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에게 반짝이는 창의성이 있음을 보았고 ‘이 작가는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 부분을 지적했지만 그래도 리뷰를 쓸 만큼 작품을 읽어본 것은, 작가의 창의성이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좋았던 덕분이었다.
같은 작가로서, 가든 작가의 창의력에 박수를 보내며 아울러 무한한 발전을 기원한다. 또한 독자로서는 다음 작품이 작가의 창의력이 더욱 꽃핀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