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상황에서 누군가 나를 위해 희생했다면, 똑같은 상황이 다시 직면했을 때 이번에는 내가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많이 다릅니다. 나는 또다시 상대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타인을 위해 먼저 희생했던 사람들이 빨리 죽는 이유는 이 때문이며, 세상에 시시한 소시민들이 남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희생은 의미 없는 것일까요?
타인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인간들은 안타깝게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결국 타인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희생자에 대한 <죄의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경멸>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당시의 상황을 수없이 되새기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무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작품 <오르골>의 노인은 그 힘든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르골을 무한하게 돌리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람이며, 자신의 일부를 과거에 두고 온 소년입니다.
<오르골>은 소녀에게 준 소년의 선물이지만 결국 소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 안에는 소년에 대한 소녀의 희생이 들어 있으며 전쟁에도 무너지지 않은 인간성이 들어있습니다. <오르골>은 단순히 골동품이 아니라 극한의 순간에서도 잊어서는 안 되는 <인간성> 그 자체입니다. 노인이 <오르골>을 누군가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고해이기도 하는 동시에 <소녀>가 가졌던 <인간성>을 전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노인은 이 세상에 남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소녀>라고 생각했습니다. 노인은 자신보다 더 도덕적인 소녀 대신에 살아 남았다는 죄의식과 그리고 자신의 삶은 <소녀>의 것이라는 부채의식으로 지금까지 살아 왔습니다. 이제 죽음이 다가 왔을 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소녀>의 삶과 그 가치를 다른 이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고해와 전달이 성공적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죄의식과 부채의식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길 바랍니다.
초반부에 주인공이 겪는 고통을 지켜보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후반의 긴장감은 눈을 잡아둡니다. 살짝 앞부분을 줄이고 후반부 절정에서 그들이 소녀를 쏴야만 하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