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감상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나 나폴리탄 괴담이라는 원작품의 특성상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읽어도 무방합니다.*
들어가며 : 나폴리탄, 다양한 이야기의 원천
<에덴브릿지 호텔 신입 직원들을 위한 행동지침서>는 최근 유행하는 ‘나폴리탄 괴담’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나폴리탄 괴담이란 ‘모호성’에 두려움의 기반을 둔 글로 2000년대 초반 한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글에서 유래하여 그 배경과 내용의 다양성으로 급격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짧은 경고문부터 긴 소설까지 나폴리탄의 변용은 넓은 범위에서 이루어졌다. 근래에 이르러는 아예 나폴리탄이 유발하는 공포심을 이용하여 쓴 작품 및 콘텐츠까지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으니 공포, 호러 소설에서 압도적으로 다루어지는 이 주제에 대해 하나의 장르가 만들어졌다고도 평가할 수 있으며 ‘나폴리탄의 시대’가 진행 중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하다.
‘나폴리탄 괴담’ 또는 경고문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1 첫째,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주의사항이 담겨 있다. 이 특별한 형식으로 쓰인 경고문을 받은 시점에서 대부분 ‘그 일’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두 번째, 나폴리탄은 ‘분명히 일어날 법한 상황’을 가정하고 여기에서 공포심이 유발된다. ‘그 일’은 분명히 배경 공간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에 독자의 몰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체로 ‘그 일’은 두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그 일’이 일어날 경우 절대 상황을 직접 확인하면 안 된다. 나폴리탄 괴담은 보는 이에게 사건이 발생할 시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그 장소를 떠날 것을 명령한다. 이는 나폴리탄 괴담이 시작된 원글에는 없던 내용으로 원글의 요리사가 손님에게 ‘다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돈은 내지 않으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한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든 나폴리탄 괴담은 뚜렷한 구조와 정형화된 패턴을 가지고 있음에도 다양한 변용을 거쳐 수많은 작품을 낳았다. 나폴리탄 괴담이 가진 하나의 특장점은 소설의 ‘원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 작품에 대한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나폴리탄 괴담의 ‘원형’적 모습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는 나폴리탄 이 글의 분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이며, 놓치면 안 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원형’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이야기가 여러 다른 스토리를 생산할 수 있는 ‘뿌리’ 형태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신화, 설화, 민담 등이 있으며 이물 괴담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나폴리탄은 신기하게도 그 스스로가 하나의 서사적 줄기가 되는 동시에 ‘경고문’이라는 특징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곁가지의 소설을 낳을 수 있다. ‘경고문’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 작가가 인물을 배치하고 상황과 사건을 이끌어낸다면 나폴리탄 괴담의 끝은 충분히 다른 창작물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요다 출판사에서는 괴이학회의 작가들이 ‘명신학교’라는 가상의 학교를 배경으로 하여 쓴 나폴리탄 괴담 형식의 소설집2이 출간된 바 있으며, 이는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어떻게 다른 작품의 원형이 되는지를 가장 현대적으로 보여준 예시가 되었다.
‘행동지침서’는 독자들의 머리에 다양한 상황에 대한 가정, 그리고 해당 상황에 독자가 취해야 할 조치를 각인시킴으로써 무한한 상상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익히 알려진 ‘열린 결말’의 기능과 마찬가지로 ‘모호함’은 (역설적이게도) 상상을 최대로 증대시키는 중요한 장치이다.
<에덴브릿지 호텔 신입 직원들을 위한 행동지침서> : 각 문항에 대하여
<에덴브릿지 호텔 신입 직원들을 위한 행동지침서>라는 긴 제목을 가진 이 소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폴리탄 괴담의 정형을 따르고 있는 지침서는 ‘에덴브릿지 호텔’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독자의 머리에 만든다. 독자들은 그 안에서 여러 상황을 마주할 위험에 놓이며, 그 일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 다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2번 항목까지는 여타의 호텔 직원 지침서와 비슷하지만 3번 항목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비로소 이 소설이 나폴리탄 괴담의 형식을 띠고 있음을 깨닫는다. 노란색 직원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에덴브릿지 호텔에 존재하면 안 되는 사람이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질감, 또는 의아함과 함께 약간의 공포를 유발한다.
5번 항목과 7번, 9번 항목은 3번 항목과 마찬가지로 ‘이질적’인 인물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 공포심이 덜하다. 직원이 아닌 ‘손님’이기 때문이다. 손님은 외부로부터 유입된 존재로 호텔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5번 항목은 “손님은 곧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7번 항목은 “굳이 호텔의 편의를 묻는 행동”을 하지 말 것을 권유한다. 9번 역시 “호텔 오너”가 손님의 의뢰를 해결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손님이 ‘이질적’이고 약간의 두려움을 유발함에도 무시를 통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음을 알려주며 작품 내의 강약 조절을 할 수 있는 문항이다. 일종의 ‘쉬어가기’의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4번 항목과 8번 항목은 그 하위 항목과 함께 ‘종교’를 언급한다. 종교를 활용한다면 더욱 경고문의 ‘불확실성’과 신비성을 높일 수 있다. 대개 목사나 신부(神父) 등 종교인은 일반의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신’과 관련한 문제의 해결을 맡으며 ‘신’의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한다. 에덴브릿지 호텔에 일종의 신이 행사하는 힘이 운행된다면 보통의 사람은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 또한, 일정 거리에 떨어져 존재하는 목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대기 시간’에 느낄 불안함 또한 더해진다. 이는 뛰어난 장치다. 다만, 목사가 ‘유능’하다는 언급이 있는데 ‘유능’이라는 단어는 목사가 자칫 ‘인간적’으로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는 만큼 신성성을 반감시키므로 삭제되거나 다른 단어로 교체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가령 ‘백발의’ 목사나 ‘수련 중인 아이’를 대동한 목사는 ‘유능한’ 목사보다 한층 더 모호해 보이며 이는 나폴리탄 괴담의 특성과 잘 들어맞는다. 또는 목사가 들고 있는 성책이 ‘헤어진’ 성경책이라거나 하는 꾸밈도 좋을 것 같다.
6번과 그 하위 항목은 ‘쪽지’에 대해 다룬다. 6번 항목은 “Clean This Room Please”라는 쪽지를 무시하라고 하며 6-1번 항목은 종이의 내용을 읽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 역시 ‘모호성’이라는 나폴리탄의 장르 특성을 잘 살린 것이라고 보인다.
10번과 11번 항목이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차별점이다. 나폴리탄 괴담은 주로 ‘없어야 하지만 존재하는 것’을 다룬다. 하지만 <에덴브릿지 호텔 신입 직원들을 위한 행동지침서>의 10번 항목은 지침을 읽는 이에게 직접 호텔에 ‘없는 공간’을 만들어 이야기하게끔 한다. ‘부재의 공간’에 대해 듣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일이다. ‘발설’은 큰 힘을 가지고 있다. ‘호텔 지하 7층’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음에도 독자들은 그에 대해 스스로 말해야 한다는 것에서 거짓의 느낌을 보다 강하게 받으며 이중으로 불길한 예감이 더해짐을 경험한다.
11번 항목은 이 지침서 자체에 나폴리탄의 특성을 부여하고 있다. 즉, 이 작품을 읽는 것 자체가 최종적인 금기가 되는 것이다. 이 점은 결말부에 힘을 실어주며 가장 강한 강도의 두려움을 전한다. 꽤 흥미로운 지점이며 더 많은 매력을 지닐 수 있는 단락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만약 가는 도중 해가 졌다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할 만한 곳으로 향해 문을 잠그세요.”라는 문장은 비문이다. 이 문장은 호텔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멀리있는 방에 들어가라는 명령으로 보인다. 정확한 문장이 되려면 ‘향해’ 라는 단어가 ‘들어가’로 교체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장이 비문임에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할 만한’이라는 어구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이 상당하다. 만약 안전지대라는 생각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는데 그 내부에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면 어떨까. 이와 같은 상상이 한 문장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이 모든 일을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그들’이라는 모호한 존재 (아마 호텔의 운영자쯤 되는 이들일 것이다) 역시 경고문을 한층 더 무섭게 만든다.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원’을 찾아가라는 말은 어떨까. ‘직원의 기도’는 어떤 효력이 있을까. 앞서 ‘목사’의 등장으로 신성성에 대한 힘을 주었기 때문에 그에 비해 뒤쪽에 등장하는 ‘직원’의 신성성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직원에게 기도를 받으라고 하는 마지막 두 문장을 삭제하고 ‘호텔을 떠나 도망치는 법’에 집중하는 것도 큰 여운을 남기는 방법이 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오며 : 치밀한 모호함의 이야기
호텔과 나폴리탄의 조합, 그리고 열한 개의 지침이 비교적 탄탄하게 엮여 만들어진 하나의 밀도 있는 괴담이었다. 앞서 말했듯 나폴리탄은 무한한 재창작의 가능성과 다른 소설의 원형으로서 작용할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작가가 후속작으로 ‘에덴브릿지 호텔’을 배경으로 한 호러 소설을 내준다면 반가울 것 같다. 또는 여러 작가의 합작으로 에덴브릿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창작된다면 그 또한, 기대가 될 만한 일이다.
코코아드림 작가는 나폴리탄의 창작에 있어 단단함을 가진 창작자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 많은 좋은 작품을 기대하며 감상을 맺는다.